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북서쪽으로 차를 몰고 약 1시간 달리면 라른(Laarne)이라는 작은 마을이 나오고 라른의 외곽 비즈니스파크에 돈육 가공업체 사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현대적인, 통유리 외장의 '보니멕스(Bonimex)' 사옥이 둥지를 틀고 있다.

   벨기에에서 연간 약 3천만유로(약 500억원) 어치의 돈육이 한국으로 수출되는 것을 감안할 때 연간 약 750만유로의 대(對) 한국 수출고를 올리는 보니멕스의 점유율은 4분의 1 가량 되는 셈이다.

   통유리 외장의 본사 사옥 옆에 창업 이후 꾸준히 확장돼 온 공장이 있다. 보니멕스는 이 공장에 한국으로 수출되는 제품 가공 라인을 별도로 두고 있다. 벨기에 삼겹살의 한국 시장 공략이 얼마나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올 하반기 한-EU FTA가 발효되면 현재 25%인 냉동ㆍ냉장삼겹살 수입관세가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낮아져 EU 산(産) 삼겹살이 한국 시장에서 더욱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게 된다. 축산농가를 비롯해 한국 돈육업계에는 '비상'이 걸리지만 소비자로서는 질 좋은 EU 산 삼겹살을 더욱 싼 가격에 즐길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벨기에는 국토 면적이 한국의 경상도 정도, 인구는 1천여 만명에 불과한 작은 나라다. 미국이나 호주, 아르헨티나 처럼 광활한 땅에서 값싼 사료가 지천으로 나지도 않는다. 그러나 EU 산 삽겹살 가운데 대 한국 수출점유율 3위의 벨기에 삼겹살은 품질이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더욱이 아시아 국가와 달리 운송 거리도 먼 나라 벨기에의 돈육, 특히 삼겹살이 어떻게 한국의 고기집들을 공략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는지 절로 궁금해 진다. 이들의 경쟁력 비결은 또한 우리 농가와 축산업계, 정부가 `FTA 시대'에 반드시 배워 우리 실정에 맞게 실천해야 할 항목이다.

   벨기에 돈육업계에서는 우선 벨기에 고유의 돼지 품종을 경쟁력 요소로 꼽는다. '란트레이스'와 '피에트랭' 2종의 고유 돼지 품종은 이웃나라의 품종에 비해 지방이 적어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살코기-지방 비율을 보인다는 것이다.

   보니멕스의 창업자 2세로 현재 경영을 총괄하는 글렌 와일로크 전무는 "벨기에 삼겹살의 경쟁력 요소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무엇보다 란트레이스와 같은 벨기에 고유 품종의 조성이 한국인 구미에 딱 들어맞는다는 점을 꼽겠다"라며 "네덜란드, 스페인 돼지 품종에서 나오는 삼겹살과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품종 만으로 경쟁력이 설명될 수는 없는 것. 자유로이 국경을 넘나들 수 있는 유럽 대륙에서 벨기에 란트레이스와 피에트랭 품종을 들여다 키우면 벨기에 산 삼겹살과 같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지 않느냐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업계에서는 벨기에 축산농가가 가진 특유의 양돈 노하우가 '신토불이'를 만들어 낸다고 설명한다. 헝가리 등 몇몇 국가에서 벨기에 돼지 품종을 들여다 키우고 있지만, 벨기에에서 나고 자라고 가공된 돈육과 동일한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플레미시(네덜란드어권) 농축산마케팅협회(VLAM)의 정육 마케팅 책임자 요리스 쿠넌은 "우리 축산농가는 결코 주먹구구식으로 양돈을 하지 않는다. 비록 소규모지만, 이들은 오랜 경험과 과학적 방법으로 노하우를 축적해 '벨기에' 돈육을 생산해 낸다"라고 말했다.

   그는 "양돈업자들은 사료 배합에서부터 양돈장 시설, 도축 시점 포착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하면 최적화한 돈육을 생산하는지를 꿰뚫고 있으며 특히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어떻게 돼지를 키워야 하는지 지식을 축적해 놓고 있다. 이게 바로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과 비교했을 때 벨기에 양돈업계의 생산성이 약 2배 높은 점도 주목할 만하다. VLAM의 정육 마케팅 책임자 쿠넌은 "벨기에의 돼지 사육두수는 약 600만마리고 한국의 경우 약 900만마리다. 그런데 연간 도축되는 것은 벨기에에서 연간 약 1천100만마리인 데 반해 한국에서는 약 1천만마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돼지 생산 2모작'을 할 과학.기술과 관리능력이 있는 국가와 `1모작' 국가의 가격 경쟁력에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벨기에 양돈업계의 또 다른 특징은 축산농가에서의 양돈에서부터 도축, 가공에 이르기까지 각 부문마다 중소업체 중심으로 운영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규모의 경제'를 시현하기가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덩치가 커서 몸이 무거운 '공룡'이 아니라 날렵한 치타처럼 급변하는 시장환경 속에 유연성을 발휘해 고객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업체 규모가 작은 만큼 경영자가 직접 공급자, 소비자와 대화하고 공정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길 수도 있다.

   보니멕스의 와일로케 전무도 새벽 5~6시에 출근해 오전 내내 공장을 돌면서 공정을 점검하고 작업자들을 질책하거나 격려하고 나서 오후에야 사무실에서 업무를 본다. 특히 한국 수출 물량에 대해서는 수입업자 관리 등을 직접 담당한다.

   와일로케 전무는 "한국 소비자는 가격도 가격이지만 품질에 매우 민감하다"라며 "축산농가에서 도축장을 거쳐 도축된 돼지가 우리 회사로 넘어올 때까지 철저히 품질 관리를 하고 고객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 신속하게 대응하고 있다"라고 강조했다.

   일관공정을 갖추되 중소업체가 업계의 근간을 이룸으로써 경쟁을 통해 가격경쟁력과 함께 품질경쟁력을 유지하는 것도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지 않는 벨기에 양돈산업의 특장점으로 꼽힌다. 이는 규모의 경제를 지나치게 강조, 대기업 산하 수직 계열화만 농.축산업의 살 길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 시사점이 있다.

   유럽 농.축산업을 현지에서 살펴온 한 한국인 관계자는 생산에서 판매.수출에 이르기까지 과학화, 체계화, 계열화 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협동조합 등 생산자 단체가 제 역할을 다 하고 관련 업계의 분담과 협력이 이뤄지는 한편 정부의 효율적 지원이 이뤄지면 우리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런 시스템은 대기업 위주의 산업체계에 비해 고용이 늘어난다는 장점이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품질에 자신감을 갖는 벨기에 양돈업계가 한-EU FTA 발효에 큰 기대를 품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지난 2004년 한-칠레 FTA 발효 이후 칠레에 잠식 당한 한국 삼겹살 시장을 되찾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보니멕스의 와일로케 전무는 "FTA가 발효돼 관세가 인하되면 상대적으로 칠레에 열등했던 가격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라며 "품질에는 자신이 있는 만큼 한-EU FTA를 계기로 최소한 칠레 산 삼겹살에 빼앗겼던 시장은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VLAM의 정육 마케팅 책임자 쿠넌도 "가격경쟁력을 칠레 산의 공세에 2006년 이후 유로화가 강세를 보이면서 대 한국 수출이 위축됐는데 FTA가 발효되면 분명히 벨기에 삼겹살은 긍정적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거들었다.

   벨기에 양돈업계는 한국 삼겹살 시장이 개방되면 칠레, 미국, 캐나다 등 역외 제3국과의 경쟁은 물론이고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 다른 EU 회원국과의 경쟁도 치열해 질 것으로 보고 효과적인 한국 시장 공략책을 마련하는 데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