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ㆍ사회적 이념대립 양상으로 치닫는 사법갈등사태의 이면에는 형사재판제도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해묵은 불화와 알력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취임 후 공판중심주의에 기초한 형사사법제도의 개선 등 일련의 사법개혁이 검찰을 배제한 채 법원 주도로 이뤄지면서 본격적으로 골이 패이기 시작했다.
 
   법원이 내세운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재판 원칙의 영향으로 해마다 무죄선고와 영장기각이 급증하면서 판사의 '자의적' 판단에 대한 검찰의 불만은 꾸준히 누적돼 왔다.
 
   ◇ 영장발부↓, 무죄선고↑ = 이번 사태 이전까지의 사법갈등은 무죄선고보다 오히려 영장기각과 관련된 경우가 더 많았다.
 
   특히 1997년 도입된 영장실질심사제가 검찰과 정치권의 반발로 후퇴했다 이 대법원장의 취임을 전후해 다시 대폭 강화되면서 검찰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24일 대검찰청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용훈 대법원장이 취임한 2005년부터 2009년까지 구속영장 발부자 수는 24만7천598명(연평균 4만9천520명)으로 2000~2004년의 48만9천528명(연평균 9만7천906명)에 비해 절반으로 줄었다.
 
   연간 구속영장 발부자 수는 2000년 10만5천448명, 2001년 10만5천294명, 2002년9만9천602명, 2003년 9만3천594명, 2004년 8만5천590명 등으로 하향 안정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대법원장이 취임한 2005년에 6만4천295명으로 줄어든 이후 2006년 5만1천482명, 2007년 4만6천62명, 2008년 4만3천32명, 2009년 4만2천727명 등 최근 5년간은 상당히 가파른 하향곡선을 그렸다.
 
   구속영장 발부율도 2004년 85.1% 수준이던 것이 2005년 87.1%, 2006년 83.4%, 2007년 78.2%, 2008년 75.7%를 거쳐 2009년에는 74.9%로 사상 처음 75% 밑으로 떨어졌다.
 
   이번 사법갈등을 촉발한 직접적인 원인이 된 형사사건에 대한 1심 무죄선고 인원과 무죄율도 이 대법원장이 취임한 이후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같은 상황 속에서 검찰과 법원의 불화는 꾸준히 깊어만 갔다.
 
   지난 2006년 대검 중수부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공모 혐의로 론스타 본사 임원들에 대해 청구한 체포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토씨 하나 바꾸지 않고 재청구함으로써사법부 판단에 정면으로 저항했다.
 
   당시 일선 검사들 사이에서는 "남의 장사에 소금 뿌리는 정도가 아니다. 거의 인분을 들이붓는 수준 아니냐"란 적나라한 표현이 동원되기도 했다.
 
   이듬해인 2007년 학력 위조 등 사문서위조 혐의 등으로 입건된 신정아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을 때에도 검찰의 반발은 간단치 않았다.
 
   ◇ 형사사법제도의 주도권이 핵심 = 이 같은 법원과 검찰의 해묵은 갈등의 근본원인은 형사사법제도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에 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검찰의 조서보다 피고인의 법정진술을 우위에 두는 공판중심주의나 피의자ㆍ피고인의 구속 타당성을 법관이 심사하게 하는 영장실질심사는, 법원의 기능과 피고인의 방어권을 강화하는 반면 검찰의 수사 관행에 제동을 걸고 조서의 증거 능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검찰은 법원이 영장을 통해 수사를 지휘하고자 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며 피의자 인권 강화도 좋고 절차를 따지는 것도 좋지만 결국 사건 피해자나 국가, 국민에게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간다며 반발하고 있다.
 
   검찰은 법원이 가해자의 인권은 철저하게 따지면서 피해자의 인권에는 오히려 눈을 감는 '이율배반'의 태도와 함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해 판결하는 포퓰리즘에 젖어 있다는 비판도 내놓는다.
 
   여기엔 과거 검찰에 있었던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권한이 법원으로 점차 넘어가고 있는데 대한 위기감도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법무부와 검찰이 영장기각시 불복할 수 있는 영장항고제나 현행 양형기준제와 별도의 양형기준법 제정, 원활한 피의자 진술 확보를 위한 플리바게닝(유죄협상제도) 도입 등 법원와 대립각을 세우며 독자적인 사법개혁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현재의 사법부는 헌법에 기초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적법한 절차를 준수하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선 공판중심주의 강화가 필수라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에 따른 무죄율 상승과 불구속 재판의 확대는 당연한 결과며, 검찰도 이를 수용해 그에 부합하는 변신 노력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사법갈등 사태는 법원 내부의 이념적 편향 논란, 법관인사제도 개선 문제로 확대되며 법조계와 정치권을 넘어 사회이념 대립으로까지 번지고 있으나, 불화의기저에는 이처럼 형사사법제도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근본적인 견해차가 자리잡고있다.
 
   따라서 이번 사태가 다시 봉합돼도 이 같은 입장차가 좁혀히기 전까지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는 휴화산의 상태를 벗어나기 힘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