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일 저녁 방북 중인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을 면담하고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8일 저녁 왕자루이(王家瑞)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과 회동함에 따라 장기교착 상태에 빠진 6자회담 재개의 물꼬가 트일 지 주목된다.

   이번 회동은 김 위원장이 북한 노동당과의 연례행사 차원에서 방북한 왕 부장을 접견하는 형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상으로는 중국이 6자회담 의장국으로서 북한의 회담 복귀를 정식으로 설득한다는 의미에 무게감이 실려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어떤 식으로 화답했느냐에 따라 6자회담 재개의 속도와 수순은 크게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게 외교가의 관측이다.

   일단 외교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김 위원장과 왕 부장의 회동이 성사된 것 자체만으로 6자회담 재개 흐름에 긍정적 신호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해석들이 나온다.

   실질적 대북영향력을 중국이 의장국으로서의 행보를 본격화함에 따라 북한으로서도 회담 재개를 향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왕 부장이 김 위원장에게 6자회담 복귀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있을 개연성이 높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구두친서를 전달함에 따라 북한으로서도 어떤 식으로든 '성의표시'를 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분석은 그동안 북한이 6자회담 복귀 문제에 대해 조금씩 진일보된 발언을 내놓고 있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지난해 7월 "6자회담은 영원히 종말을 고했다"(북한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발언)고 선언했던 북한은 "관련문제를 양자.다자대화를 통해 풀 용의가 있다"(9월 중순 중국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 접견)→"미국과의 양자회담 진전에 따라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을 진행할 용의가 있다"(10월초 중국 원자바오 총리와의 면담)→"6자회담 재개의 필요성과 역할에 대해 공통이해 도달"(12월초 스티븐 보즈워스 미 대북특사 방북시)로 단계적으로 진전된 입장을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목할 대목은 이번 회동에서 6자회담 복귀와 관련해 북한측의 공식적 언급이 나오지 않고 있는 점이다. 9일 새벽 두 사람의 회동 사실을 전한 조선중앙통신은 후 주석의 구두친서 내용은 물론 대화내용도 일절 보도하지 않았으며 신화통신을 비롯한 중국의 관영매체는 아예 관련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외교가 일각에서는 중국의 대북설득 노력이 이렇다할 소득 내지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북때 김정일 위원장이 6자회담 복귀와 관련해 전략적으로 발언을 내놓았던 것과 달리 이번에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은 결국 중국의 설득에도 북한의 스탠스에 변화가 없었음을 보여주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특히 북핵문제를 총괄하고 있는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이번 회동의 수행자 명단에서 빠져있는 것과 연결짓는 시각이 나온다. 북한이 매번 김 위원장과 왕 부장의 회동때마다 수행했던 강 부장을 배석자 명단에서 제외했다면 이는 이번 회동에서 북핵과 관련해 의미있는 논의를 진행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보인 것이라는 풀이다.

   여기에는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을 둘러싼 북.미간의 대치가 결정적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는게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평화협정 회담과 제재해제를 놓고 북.미가 서로 한치의 양보도 없는 대치를 이어가는 현 국면에서 중국이 북한을 설득하는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다음 수순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카드'인 6자회담 복귀선언을 전략적으로 남겨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있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김 위원장으로서는 베이징 방문이라는 다목적 카드를 통해 경제난 타개와 안정적 권력승계, 대외관계 개선을 일거에 꾀하는 큰 틀의 시나리오를 구상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김 위원장의 방중은 살아있는 카드"라며 "시기의 결정만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와 맞물려 외교 소식통들 사이에서는 왕 부장의 이번 방북이 당초부터 김 위원장의 방중을 초청하기 위한 예비수순이었다는 분석이 있다. 한 소식통은 "이번 방북을 통해 북한이 6자회담 복귀를 선언할 가능성은 애초부터 높지 않았다"며 "그보다는 김 위원장의 방중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목적이 더 강해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중국이 이번 회동을 계기로 북.미간에 새로운 중재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이 이번 회동을 계기로 다시 미국에 '바통'을 넘기고 북한과 한차례 더 고위급 대화를 갖도록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 고위소식통은 "이번 방북은 중국이 새로운 대화싸이클에 재시동을 거는 의미"라며 "이번 회동결과를 분석한 뒤 미국에게 메시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6자회담 복귀에 앞서 북.미가 6자회담의 재개조건을 둘러싼 추가대화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6자회담 재개는 당초 설 전후로 관측됐던 것과는 달리 3∼4월께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는게 외교가의 대체적 관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