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왕표
[경인일보=]기자의 졸고 '이재창과 꿈의 씨앗, 그리고 새로운 10년'(경인일보 2009년 12월 24일자 데스크칼럼)이 뜬금없는 인연을 만들었다.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이 칼럼을 읽고 이재창 전 인천시장(현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새얼아침대화 강사로 초청한 것이다. 지난 10일 오랜만에 인천시민들 앞에 선 그는 1960년대 이후 역대 인천시장들의 '꿈'을 얘기했다.

"1965년, 인천시는 예산이 1억원을 넘었다고 좋아했습니다. 11개과에 불과했구요. 공무원 급여일에는 회계 담당자가 은행에 돈을 빌리러 다닐 정도의 시세였습니다. 하나 꿈을 갖고 비전을 제시하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무관시보로 인천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이재창 전 시장은 1965년 2월부터 1년5개월간 재임한 윤갑로 전 시장 얘기부터 꺼냈다. 그가 전한 윤갑로 시장은 공단이나 고속도로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65년에 '꿈같은 비전'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윤갑로 시장이 제시한 비전은 ▲인천항 제2도크 증설 ▲군부대 조병창이 있던 부평에 수출공단 조성 ▲주안염전을 메워 공단 조성 ▲경인국도를 대신할 경인고속도로 건설 ▲경인운하 건설 등 5가지다. 당시 인천항 제2도크 증설만 기공식을 가졌을 뿐 나머지는 모두 계획에 불과한 사업들이었다. 신포동과 동인천역 일대가 도심의 전부였던 시절의 얘기다. 1967년 기획실장 겸 홍보실장을 맡은 이재창마저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윤갑로 시장이 제시한 비전을 공무원들을 상대로 교육시키면서도 늘 '과연 이게 이뤄질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고 했다.

시대를 앞선 비전들이 공통으로 겪는 '설움'이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윤갑로 시장의 비전은 하나하나 인천의 현실이 되었다.

이재창 전 시장은 시장 등 정책책임자들이 꿈을 가질 것을 주문했다. 더불어 시민들과 지역의 지도자들이 그 꿈을 함께 공유하고 참여하는 일상적인 메커니즘을 만들어 추동력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충고도 했다. 윤갑로 시장의 비전은 당시 인천 지도층 인사와 시민들의 공동 목표가 돼 함께 움직였다. 이재창 전 시장이 꿈꿨던 행정구역확대, 송도 공유수면매립면허, 국제공항 영종 유치라는 비전도 시민들과 함께 공동 목표로 공유돼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벌여 성과를 얻어냈다는 비화를 들려주었다.

이재창 전 시장은 시의회가 없던 1988년 인천발전협의회(회장·이기성, 당시 인천상의회장)를 민관 공동기구로 구성해 시정을 설명하며 협조를 구해 나갔다. 인천발전협의회가 힘을 발휘한 것은 1988년 11월, 영종·용유·계양의 인천시 편입안이 국회 내무위원회에서 벽에 부딪혔을 때다. 경기도 땅을 가져와야 하는데 포천출신의 이한동 내무부 장관, 임사빈 경기도지사, 여주출신의 정동성 내무위원장 등 경기도 거물급 인사들이 쟁쟁하게 포진해 있어 무산 위기에 직면했다. 소식을 들은 인천의 지도자들이 국회 내무위 회의장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였고, 김윤환 원내총무가 대통령 지시사항이라며 거들어 영종·용유·계양의 인천시 편입을 가까스로 관철시켰다는 얘기다.

꿈은 주변 사람들에게 번져가고, 꿈꾸는 사람들끼리 연대도 만들어 낸다. 이재창 전 시장은 1988년 5월 한진그룹 조중훈 회장과의 만남도 소개했다. 조 회장이 인천시장실을 찾아와 김포공항을 대체할 신공항이 청주로 거론되는데 초음속 대형 비행기가 들고나는 허브공항은 영종도를 매립해 만들어야 소음 민원도 줄이고 대형 공항을 지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는 것이다. 이 힌트가 현재의 인천국제공항의 시작이 되었다.

이재창 전 시장의 충고 중 지금 인천이 귀기울여야 할 점은 '명품도시' 같은 추상적인 비전보다 가슴에 와 닿는 가시적인 비전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또 신도시만으로는 인천의 브랜드화가 어렵다고 지적하며 강화, 구도심 등 근대화 지역을 어우르고 문화경쟁력이 고려된 브랜드화를 주문했다. 그는 서해안시대에 새만금에 들어서는 도시에 인천은 주목해야 한다는 주문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