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여중생 이모(13) 양 납치살해 피의자 김길태(33)가 검거 5일째인 14일 이 양의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시인했다.
이 양 납치살해 사건을 수사해온 부산 사상경찰서 수사본부는 김 씨가 이날 오후 3시10분께 이 양의 시신을 유기한 혐의에 대해 시인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김 씨가 이 양을 지난달 24일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 당일 또는 25일 새벽 사이에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 부분에 대한 진술은 거부하고 있어 추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수사를 집중하고 있다.
◇"일어나 보니 숨져 있었다" 자백 = 이번 사건의 수사 부본부장인 김희웅 사상경찰서장은 이날 오후 브리핑에서 "피의자가 오늘 오전 거짓말 탐지기 조사 및 뇌파검사 후 프로파일러와의 면담에서 심경변화를 일으켜 오후 3시10분께 범행 일부를 시인했다"고 밝혔다.
김 서장은 "피의자는 '지난달 24일 술을 마시고 부산 사상구 덕포동 일대를 돌아다니다 덕포동의 빈 집에서 잤는데 자다 눈을 떠보니 전기 매트에서 옷이 모두 벗겨진 이 양이 숨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김길태는 시신 유기 혐의에 대해서도 비교적 자세하게 진술했다.
김 서장은 "피의자는 이 양의 시신처리를 고민하다 끈으로 이 양의 손과 발을 묶고 시신을 전기 매트용 가방에 넣어 근처 파란 집으로 옮긴 뒤 옆집 지붕에 있는 보일러 물통에 시신과 물을 섞은 석회가루, 타일, 이 양의 옷이 든 비닐봉지를 넣고 뚜껑을 닫아 돌로 눌러 놓고는 달아났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김 서장은 또 "도주 후 친구들에게 전화를 수차례 걸고, 사상구 일대 빈집 등을 돌아다니며 숨어 지냈다'고 피의자가 진술했다고 밝혔다.
◇거짓말탐지기.프로파일 큰 역할 = 검거후 5일째 완강히 범행을 부인해 왔던 김 씨가 입을 열게 된 것은 거짓만 탐지기와 프로파일러의 역할이 컸다.
김 씨는 이날 오전 9∼11시 실시된 거짓말탐지기 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이 탄로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지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양의 사망 추정장소 1곳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아느냐"고 물은 조사관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지만 거짓말탐지기에는 '거짓'이라는 반응이 나왔고, 이 양을 성폭행한 곳으로 지목한 장소 중 한 곳을 보여주자 뇌파 움직임이 급변, 사실상 범행장소를 알고 있음을 엿보게 했다.
이날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한 것도 프로파일러가 펼친 고도의 심리전에 의해 이뤄졌다.
거짓말 탐지기가 자신이 한 말을 '거짓'으로 판명하고, 거짓말을 할 때 자신의 뇌파 움직임이 급변하는 것을 직접 보도록 해 김 씨가 체념과 함께 더 이상 범행 부인을 할 수 없도록 유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결국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피의자의 경우 점차 합리적인 언행을 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에 모든 것을 자백하는 경우가 많다는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위의 예측대로 검거이후 5일간의 침묵을 깨고 닫았던 입을 열었다.
◇납치.성폭행.살해 부분 밝히는게 관건 = 김 씨는 시신을 유기한 혐의에 대해서는 비교적 자세히 진술하면서도 이 양의 납치, 성폭행, 살인 부분에 대해서는 정확한 진술을 하지 않고 있다.
김 씨는 "술에 취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납치와 성폭행, 살인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에 따라 경찰은 프로파일러와 수사관을 번갈아가며 조사실에 투입, 김 씨의 추가 자백을 받아내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경찰은 또 김 씨가 지난해 12월 이 양이 다니는 한 초등학교 화장실에 들어가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성폭행을 시도한 주장이 제기됨에 따라 여죄를 추궁하는 한편 이 양의 시신유기 이후 도주 행적에 대해서도 조사를 집중적으로 벌이고 있다.
◇"납치 당일 수색 제대로 했더라면.." = 이 양이 납치된 당일인 지난달 24일 또는 15일 새벽 사이 살해됐을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경찰의 허술한 초동수사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 양은 지난달 24일 오후 7시 이후 부산 사상구 덕포동 자신의 집에 혼자 있다 납치됐고, 오후 10시50분께 경찰에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그러나 시력(왼쪽 0.2, 오른쪽 0.5)이 나쁜 이 양이 안경은 물론 휴대전화기도 놓고 집에서 사라졌고, 집 화장실 바닥에서 외부인의 것으로 추정되는 운동화 발자국 3~4점이 발견됐는데도 경찰의 본격적인 수색은 다음날 아침부터 이뤄졌다.
납치보다는 가출 등 단순한 실종사건일 가능성을 염두에 둔 탓이다.
경찰이 실종 신고를 받은 당일 이 양 집 주변만 제대로 수색했어도 이 양의 목숨을 건질 수 있었거나 최소한 이번 사건을 조기에 해결할 수 있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16일 현장검증, 19일 검찰에 사건송치 = 경찰은 김 씨가 납치와 성폭행, 살해 부분의 범행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날 자백 내용과 그동안 밝힌 자신의 행적을 중심으로 오는 16일 현장검증을 실시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경찰은 지난 12일 법원으로부터 현장검증을 위한 영장을 발부받아 놓은 상태다.
현장 검증이 끝나면 오는 19일께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