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ㆍ경찰의 상시적인 단속과 감시활동에도 폭력조직이 오히려 매년 늘어나는 것은 조직범죄의 서식환경은 날로 좋아지는 반면 불구속 수사원칙의 강화 등으로 수사여건은 갈수록 열악해지지 때문이다.

   수사당국은 이대로 간다면 언젠가 합법사업으로 위장한 폭력조직인 일본 야쿠자나 지하경제를 주름잡는 거대 범죄조직인 러시아 마피아가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닐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 개선되는 서식환경 = 자금원의 다양화로 안정적으로 자금을 확보한 범죄조직들이 수사기관에 노출되지 않고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게 검찰의 분석이다.

   과거 유흥업소 운영 등에 그쳤던 자금원이 이제는 건설시행업, 대부업, 대형 집합상가 운영, 사행성 오락실 관련 사업, 기업 인수합병(M&A) 관여 등으로 과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다양화됐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과거처럼 살인이나 폭행, 범죄조직 구성 등으로 적발되는 사례는 줄고, 불법 대부업, 자본시장법 위반, 게임산업법 위반 등 경제범죄로 단속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대검 강력부의 한 검사는 12일 "과거에는 폭력조직 검거의 90% 이상이 살인이나 폭행에 의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살인은 거의 없고 폭행도 눈에 띄게 줄었다"며 "대신 복잡해서 잘 드러나지 않고 입증도 어려운 경제범죄 등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밝혔다.

   최근 검찰이 불법 대부업이나 사행성 게임을 집중 단속하고 있는 것도 자금원을 적극적으로 차단하고 범죄수익을 환수함으로써 폭력조직들의 존립기반을 와해시키기 위한 것이다.

   ◇ 악화되는 수사여건 = 사법부의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 수사원칙의 강화로 수사여건이 불리해진 것도 가뜩이나 어려워진 폭력조직 수사나 단속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조직범죄는 갈수록 치밀하고 교묘해져 법망을 피해 다니고 있지만, 임의동행, 압수수색, 구속 등의 요건이 엄격해지면서 수사나 단속은 과거보다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중국, 일본, 러시아 등 해외 폭력조직들과 연계하는 등 활동이 국제화되면서 외국인을 동원한 범죄가 자행돼도 신원파악이나 검거가 쉽지 않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게다가 피해자나 참고인의 법정 증언의 중요성이 커졌지만 신변위협 때문에 피해자들이 증언을 기피해 유죄 입증은 훨씬 까다로워졌다고 한다.

   형사정책연구원 조병인 범죄연구센터장은 "범죄조직의 활동이 합법화ㆍ양성화ㆍ국제화되면서 갈수록 적발이나 단속은 어려워지는 반면 수사기관은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지 못한채 피의자 인권강화 등과 맞물린 제약들 때문에 사실상 무장해제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 '한국판 야쿠자' 현실화 우려 =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범죄 청정국'인 우리나라지만 기업형으로 성장하는 폭력조직들을 계속 방치한다면 언젠가는 공권력이 통하지 않는 '한국판 야쿠자'나 '토종 마피아'가 등장해 아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조 센터장은 "기업형으로 성장한 범죄조직이 야쿠자처럼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순간 공권력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 있다"며 "수사나 단속은 때가 있는 법인데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들처럼 범죄조직이 활개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사회에 독버섯처럼 기생하는 폭력조직을 발본색원하려면 검찰과 경찰을 비롯한 수사기관의 철저한 공조체제 구축과 함께 전문수사인력을 보강하는 등 조직범죄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더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조직폭력배를 미화하는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왜곡된 국민의식도 조직범죄가 서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정이나 개선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검 강력부의 한 검사는 "조직범죄 수사는 사회 안전을 위해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지만, 위험하고 힘든데다 충분한 보상은 없다는 인식 때문에 검찰 내에서도 3D업종"이라며 "적극적인 지원과 수사여건의 개선, 전문수사인력 보강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