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사업으로 평가받는 새만금방조제 건설 공사가 착공 19년 만에 완공된다.
1991년 11월에 시작된 길이 33㎞의 방조제 건설사업이 온갖 난관을 견뎌내고 27일 대망의 준공을 보게 된 것이다. 고단하고 길었던 여정을 끝내고 새로운 꿈을 키우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게 됐다.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4만100㏊의 거대한 담수호를 잉태한 새만금 방조제는 '바다의 만리장성', '바다의 고속도로'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길이와 위용을 자랑한다.
애초 농지 감소에 따른 식량증산을 목표로 시작된 새만금사업의 1단계격인 방조제 건설공사는 두 차례의 중단 위기와 내부 용도변경 과정을 거치는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모든 난관과 시련을 극복하고 19년 만에 그 결실을 보게 됐다. 이번 방조제의 준공은 앞으로 담수호를 메워 새롭게 조성할 광활한 대지(2만8천300㏊)의 본격 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새만금방조제 사업의 역사는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매년 농지감소로 식량난이 우려됨에 따라 농지조성 목적으로 전북 군산에서 신시도를 거쳐 부안으로 연결되는 '새만금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1987년 12월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선거공약으로 채택됐던 새만금 사업이 본격적으로 일반에 공개된 것은 80년대 후반. 1989년 새만금종합개발사업의 기본계획을 발표한 정부는 1990-1991년 환경영향평가를 거쳐 1991년 12월 사업시행인가를 고시하게 된다.
그리고 같은해 12월28일 전북 부안군 새만금 1공구 현장에서 노태우 대통령과 전북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적인 첫 삽을 뜨게 됐다.
19년간 4개 공구로 나눠 진행된 이 공사는 두 차례 중단되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1999년에 터진 시화호 수질 오염사고의 영향으로 그해 5월부터 2001년 5월까지 물막이 공사가 중단된 채 '민간공동조사'가 진행됐는가 하면, 2003년에는 환경단체가 법원에 방조제 공사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하는 바람에 6개월 간 또다시 공사가 중단되는 불운을 겪었다.
2004년 1월 서울고법의 공사 재개결정으로 다시 시작된 방조제공사는 2006년이 돼서야 끝물막이 공사를 완료했으며, 이후 보강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애초 전체 부지를 농지로 개발키로 했던 계획이 대폭 수정되며 혼란을 낳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농지 72%, 복합용지(산업 및 관광 등) 28%의 비율로 바뀐 토지이용계획이 또다시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농지(30%)가 대폭 축소되고 대신 산업과 관광 등에 중심을 둔 복합용지 비율이 70%로 늘어나 논란을 빚기도 했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는 무려 19년이나 진행된 만큼 각종 진기록도 양산했다.
물속에 잠겨 있는 하단부의 폭이 평균 290m, 높이가 평균 36m인 방조제 건설에 투입된 토사량은 1억2천300만㎥. 인근 해창석산과 신시도 산을 허물어 모은 사석 4천100만㎥와 바닷모래 8천200만㎥가 투입됐다. 15t 덤프 1천230만 대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다.
지금까지 공사장에 투입된 인력도 237만 명. 여기에다 덤프와 굴착기, 준설선 등 건설장비 91만 대도 가세했다.
농어촌공사 새만금사업단의 심현섭 공무팀장은 "새만금 사업은 단순히 둑을 만드는 공사가 아니라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험난한 사업이었다. 앞으로 국내에서는 나올 수 없는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이었다"며 난공사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그는 "시화호 수질문제가 불거졌을 때 환경단체가 무효소송을 내 공사가 중단되거나 지연됐을 때 가슴이 아팠지만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세계 최장의 방조제를 우리의 기술과 힘, 불굴의 정신력으로 해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방조제에 설치된 신시와 가력 등 2개의 배수갑문을 통해 드나드는 바닷물의 양은 하루 72억t으로, 소양댐 저수량의 2.5배에 달한다.
이 같은 방조제 건설의 성공신화에는 고도로 축적된 국내 토목 기술과 현장 인력의 땀방울, 그들의 투혼이 고스란히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완주 전북지사는 "새만금이야말로 전북은 물론 우리 대한민국의 미래비전을 실현할 수 있는 축복의 땅"이라면서 "이번 방조제 준공을 계기로 2단계 사업이라 할 수 있는 내부개발에 박차를 가해 새만금을 동북아 최대의 경제허브로 육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