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인 셋째 아들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리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2일 돌연 사망했다.

   북한의 라디오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이날 밤 9시 정규뉴스에서 "리 제1부부장이 교통사고를 당해 2일 0시45분 80살을 일기로 서거했다"고 전했는데, 고령인데다 북한 권부의 핵심 `실세'로 알려진 그가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부분에 시선이 쏠렸다.

   북한에서 노동당 조직지도부는 당, 군, 내각, 기타 사회조직 전반의 인사를 총괄하는 핵심 기구로, 보통 3명 내지 4명의 제1부부장이 부문별로 업무를 분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직지도부의 부장직은 대외적으로 항상 공석인데, 김정일 위원장이 겸직한다는 설도 나온다.

   이런 요직에 있는 80대 고령의 인사가 심야에 교통사고로 숨졌다는 보도가 우리 상식으로는 좀 의아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사고 직전 리제강의 동선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일 낮 김정일 위원장이 제963군부대(호위사령부 별칭) 예술선전대 공연을 관람했다고 전했는데, 수행자 명단에 리제강도 포함돼 있었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김 위원장의 공개활동을 하루 뒤 보도하는 북한 매체들의 관행에 비춰, 이 공연은 1일에 열렸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리제강은 1일 김 위원장의 공연 관람을 수행하고 모처로 이동하다 교통사고를 당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식적으로 보면 올해 80세인데다 핵심 요직에 있는 리제강이 심야에 자신이 직접 차를 몰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숙련된 운전기사가 모는 고급 승용차의 뒷좌석에 앉아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북한 매체가 전한 리제강의 `윤화 사망' 소식에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 이유다.

   국내 한 언론은 김정일 위원장이 마련한 `비밀파티'에 참석한 뒤 리제강이 음주 상태에서 손수 승용차를 몰고가다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고 추측성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은 극도로 열악한 북한의 도로 여건을 `주범'으로 꼽는다.

   교통연구원의 안병민 북한교통연구센터장은 "평양처럼 도로 사정이 비교적 좋은 곳도 밤에 가로등이 켜지지 않아 어둡고, 중앙분리대 같은 안전시설도 제대로 설치돼 있지 않다"며 "특히 리제강 같은 특권층은 교통신호를 무시한 채 과속하는 일이 잦아 그만큼 사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이런 추측을 뒷받침하듯이 북한의 최고위층 인사가 교통사고로 숨지는 일은 심심찮게 터진다.

   가장 최근에는 강원도 당위원회 책임비서 겸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인 리철봉(향년 78세)이 작년 12월 교통사고로 사망했고, 앞서 2003년 6월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총애를 받던 김용순(〃69세) 노동당 대남담당 비서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 그해 10월 사망했다.

   김 위원장의 전처인 고영희(〃51)도 2003년 9월 교통사고로 머리를 크게 다친 뒤 이듬해 5월 파리의 한 병원에서 종양 치료를 받다가 숨졌고, 김 위원장의 매제이자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알려진 장성택 당 행정부장도 2006년 9월 평양 시내에서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북한 최고의 성악가로 꼽히는 인민군 공훈국가합창단 인민배우 석지민(〃50)도 2005년 11월 북한 내 모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