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7일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주택가격 안정 기조를 유지하면서 실수요자의 거래 불편을 없애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함에 따라 정부가 `집값 안정'과 `거래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묘안 짜기에 나섰다.
국토해양부 등은 총부채상환비율(DTI) 폐지 등 집값을 자극하는 정책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보고 새 아파트를 분양받고도 기존 주택이 팔리지 않아 이사를 하지 못하는 실수요자 등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하지만 '집값 안정'과 '거래 활성화'는 개념이 어느 정도 배치되는 측면이 있고 이 대통령도 건설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다시 언급한 만큼 당장 부동산·건설경기를 인위적으로 부양하는 방안은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게 관가의 전망이다.
◇정부 무슨 카드 만지고 있나 = 국토부가 일단 검토하는 카드는 '4.23 대책'을 완화하는 것이다.
4.23 대책은 새 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보유한 기존주택을 구입하는 무주택 또는 1주택자에게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초과해 대출을 지원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책은 지원 조건이 까다롭고 매수-매도자가 딱 맞아떨어지기 어려워 대책 시행 한 달이 넘도록 지원 실적이 전혀 없는 상태다.
정부는 이에 따라 4.23 대책의 지원 대상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입주예정자가 보유한 기존주택의 범위가 강남 3개구를 제외한 6억원 이하, 전용 85㎡ 이하로 제한돼 있고, 입주예정자의 자격도 입주기간이 지나 분양대금을 연체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어 조건이 까다롭다는 지적이 많다"며 "자격 요건을 풀어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기존주택의 가격, 면적 제한을 완화하고 분양대금을 연체하지 않는 경우도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 등이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분양가 상한제를 일부 손질하는 방안도 재추진된다.
국토부는 그동안 분양가 상한제가 다양하고 질 높은 주택 공급을 저해하고 가격 급등기에 시장 기능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보고 민간택지에 짓는 민영 아파트에 대해서는 분양가 상한제를 폐지할 것을 주장했지만, 국회에서 번번이 좌절됐다.
국토부는 민간택지 아파트의 분양가 상한제 폐지를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 만큼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함으로써 상한제 폐지를 다시 추진할 예정이다.
특히 친환경 저에너지 주택처럼 공사비가 많이 드는 아파트는 상한제 적용에서 제외하거나 민간택지의 경우 강남 3개구 등 투기우려 지역만 상한제를 적용하고 나머지는 풀어주는 등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검토될 전망이다.
한만희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상한제가 개인 간 거래 활성화와 직접 연결되는 건 아니지만 업체의 창의적 주택 건설을 경색시켜 거래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된다"며 "전면 폐지는 아니고 시장안정 기조를 정착시키는 범위에서 보완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위적 경기 부양 없을 듯 = 이날 비상경제대책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이 총부채상환비율(DTI), 담보대출인정비율(LTV) 완화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표명한 만큼 정부도 대출 규제를 완화하지는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원재 국토부 주택정책관은 "가계대출이 다른 나라보다 많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려 도입된 제도이고 작년 9~10월 강화 조치를 했는데 지금 시점에서 풀어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취·등록세나 양도세 인하 등은 논의되지 않았으며 검토하지도 않는 것으로 안다"며 "당장 대책을 마련하려는 게 아니라 부동산 가격이나 거래 움직임이 심각한 상황인지, 조정 과정인지 등 상황을 평가·진단하는 단계"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이 이날 "무책임하게 주택시장에 뛰어들어갔다가 (미분양 등으로) 많은 이들에게 부담을 준 건설사는 도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함에 따라 부실 건설사에 대한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건설사에 책임을 묻는 방안은 구체적으로 거론되지 않고 있으나 일단 채권 은행들이 진행하는 건설사에 대한 신용위험 평가 결과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채권 금융기관은 현재 시공능력 상위 300위권 건설사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진행중이며 이르면 이달 말 건설사별로 A, B, C, D등급을 매겨 평가 결과를 공개할 예정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300위권내 20~30개 건설사가 C(워크아웃)나 D(퇴출) 등급을 받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부실 주택업체와 경영자에 대해서는 페널티(불이익)를 주는 방안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분양 예방 시스템'도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국토부는 이와 관련해 부실 건설사가 분양 가능성이 없는 주택사업을 시행해 미분양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승인 등 인허가, 대출, 분양보증까지 아파트 전 사업 단계에 걸쳐 '필터링(filtering)' 기능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
◇업계 "대출 규제 완화 시급" = 건설업계는 그러나 투자심리가 극도로 위축된 상황에서 침체된 거래를 활성화하려면 대출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국주택협회 김동수 실장은 "주택시장 거래 정상화를 위해서는 대출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며 "LTVㆍDTI 등 대출규제를 지역별로 차등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현재 강남 3구인 투기지역과 서울권, 수도권에 각각 40%, 50%, 60%로 적용하는 DTI 비율을 각각 10% 포인트씩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거래 침체로 집을 팔고 싶어도 팔지 못하는 다주택자를 위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폐지하거나 현재 시행하는 감면 혜택을 연장해줘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주택 거래를 일으키는 원동력 중 하나는 다주택자의 투자"라며 "시장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측면에서 다주택자에 대해 세금을 중과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건설업계는 또 지방에만 적용되는 미분양 주택에 대한 양도세 감면 혜택을 수도권으로 확대하고, 보금자리주택 공급 물량과 시기를 조절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위적인 거래 활성화 대책을 내놓기보다는 시장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최근 집값이 안정세를 보이는 만큼 무리하게 부양책을 남발할 시점은 아니다"면서 "양도세 중과 감면 기간을 연장해주는 정도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