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오늘은 동족상잔의 6·25전쟁이 발발된지 60년 되는 날이다. 6·25전쟁으로 많은 인명이 살상되고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라는 오명이 가시지 않은 채 아직도 북한은 천안함 사태 등 전쟁에 대한 압박을 가하고,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등 협박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핵무기 개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등 침략국으로서의 근성을 버리지 못해 북한 인민들은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한엔 아직도 그들 체제를 동조하고 거리낌 없이 그들을 옹호하는 세력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전후 세대는 6·25에 대한 개념 정립이 돼있지 않고 6·25가 북침이라는 망상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등 역사교육 체계에도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1950년 6월25일 새벽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얻은 북한은 7개 보병사단과 1개 기갑사단 등 11만1천여명의 병력과 소련제 탱크 등을 앞세워 기습 남침을 강행했다. 3년여에 걸친 전쟁으로 37만여명이 숨졌고 38만7천여명이 북에 납치됐거나 행방불명됐다. 13만여명의 한국군이 6·25전쟁의 포화속에 산화했고 우리를 도와준 유엔군 4만여명이 전사했으며 한국군과 유엔군 4만여명이 포로로 붙잡히거나 실종됐다. 일제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남한을 순식간에 잿더미로 만들었다. 1953년 휴전 직후 우리는 국민총생산 67달러라는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 각 국의 원조로 살아온 아픔을 겪었다. 뿐만 아니라 헤어진 이산가족의 처절함이 아직도 남아 있다.

지난 23일 수원중학교에선 6·25전쟁 발발 60주년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뜻깊은 작은 행사가 열렸다. 3군사령부가 수원중학교 출신 참전용사 76명의 이름을 새긴 6·25참전자 명패 전달식을 가진 것이다. 3군사령관은 작게나마 참전용사들의 헌신과 애국충정을 되새기고 가족과 지역주민, 학생들에게 애국심·호국정신을 계승시켜주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따라 역사를 왜곡하고 세계 80여개국 정부, 국가지도자, 국제기구가 북한의 천안함 사태를 규탄한 후에야 국회는 국방위에서 북한의 천안함에 대한 군사도발 규탄 및 대응조치 촉구 결의안을 의결했다.

뒷북 대처에 국민들은 아연할 수밖에 없다. 선열들의 희생속에 우리는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에 살고 있다. 전후 세대에겐 역사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