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원에 있는 스테인리스 제조업체인 비엔지스틸 노사는 지난 23일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와 임금 및 단체협약을 조인했다.
과거에 4명이던 상근 전임자를 2명으로 줄이고 일정 시간만 노조 일을 하는 부분 전임자 2명을 두기로 합의했다. 이 회사 노조는 민주노총 소속이다.
외형상으로 보면 전임자 수는 4명으로 이전과 같지만 회사에서 월급을 다 대주는 상근 전임자는 반으로 줄었다.
이 회사 조합원 수는 303명이므로 노사가 법정 한도(5천시간)를 준수한 것이다.
지난해 77일간 `옥쇄파업'으로 극한 충돌을 경험했던 쌍용자동차 노사도 최근 타임오프 한도에 맞춰 전임자 수를 기존 39명에서 7명으로 줄이기로 단협을 갱신했다.
타임오프 시행과 더불어 대규모 노조가 `군살'을 빼고 구조조정에 들어가는 한편 기존의 이념지향적 정치투쟁에서 벗어나 실용적인 노선을 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물론 곳곳에서 타임오프제 시행을 둘러싸고 파업 조짐이 나타나는 등 충돌 양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일정기간 진통을 겪고 나면 새로운 노사관계를 정립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크다.
아무튼 7월1일부터 사용자가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유급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한도내에서 노사 관계 발전을 위한 업무에 종사할 때만 임금이 지급된다.
사측이 급여를 주는 유급 노조전임자 수가 대폭 줄어들면서 노조가 전임자를 그대로 유지하려면 스스로 별도의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
대기업 노조와 양대 노총이 주도해온 노동운동 패러다임에 일대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 대기업 노조 전임자 10명 중 7명 준다 = 단체협약이 만료된 사업장의 사용자는 다음달부터 노조와 협의를 통해 타임오프 한도 내에서만 노조 전임자에게 임금을 주면 된다.
이를 어기면 2년이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타임오프 한도를 초과하는 시간과 인원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는 노조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의 기준인 타임오프 한도는 이른바 '하후상박' 원칙이 적용됨으로써 대다수 중소기업 노조의 전임자는 기존과 같거나 늘어날 여지가 있는 반면 대기업은 과거보다 큰 폭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1만 명 이상 대기업 노조 12곳의 전임자는 현재 750명에서 210명으로 72%(540명)나 줄어들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사실상의 전임자가 220명이나 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현대차 노조는 2012년 6월까지 24명, 같은 해 7월부터는 18명의 전임자만 둘 수 있다.
기아차는 137명에서 18명, 현대중공업은 55명에서 18명, LG전자는 27명에서 11명, KT는 27명에서 18명, GM대우차는 91명에서 14명, 두산인프라코어는 16명에서 5명으로 각각 줄어든다.
반면 조합원 300명 미만 중소 규모 사업장의 노조는 0.5~2명까지 유급 전임자를 둘 수 있게 되므로 노조 활동이 크게 위축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에 설립된 노조 중 88.3%는 조합원 300명 미만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현재 노조원수 101명 이상 299명 이하 사업장의 평균 노조 전임자는 1.3명이지만 타임오프 한도를 적용하면 이들 사업장에서 1.5~2명의 전임자를 두는 것이 가능하다.
◇ 노동운동 지각변동 일어나나 = 타임오프제 시행으로 양대 노총이 체감하는 파급 효과는 다를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노총 산하 노조 중 조합원 300명 미만 사업장 노조의 비율은 88%에 달하고 민주노총의 300명 미만 비율은 70% 정도로 추정된다.
따라서 타임오프가 현장에 적용되면 대규모 사업장이 상대적으로 많은 민주노총이 더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조 전임자 축소는 양대 노총의 조직 운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상급단체는 개별 사업장에서 파견된 노조 전임자와 자체적으로 채용한 직원들로 구성된다.
작년 말 현재 한국노총을 비롯해 산하 산별노조 등에 파견된 전임자는 129명이며 단위노조 상근 겸직자는 94명에 달한다.
민주노총은 자체적으로 파견 전임자 수를 조사하지 않았지만 노동계는 한국노총에 비해 적은 100명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개별 사업장 노조의 전임자가 축소되면 상급단체 파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노동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노동부는 최근 마련한 타임오프 업무 지침을 통해 사업장과 무관한 순수한 상급단체 활동은 타임오프를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노사정이 노사 상생 협력 차원에서 2년간 상급 단체 파견 전임자의 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간접적인 재정 지원 방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해 타임오프 한도 확정의 파급효과는 단기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타임오프 한도가 현장에 적용되면 단체교섭, 노사 협의, 고충 처리, 산업 안전 활동 등의 시간 비중은 증가하고 각종 회의나 수련회, 시민단체 활동, 경조사 참여 등의 비중은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장기적으로는 유급 노조 전임자가 줄면서 노동운동 방향이 과격한 정치 투쟁 노선에서 조합원의 실질적인 이익을 위한 합리적 실용 노선으로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타임오프제 시행에 맞춰 일부 사업장은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
정치 투쟁 대신 조합원 복지 중심의 노동운동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 현대중공업 노조와 서울메트로 노조는 타임오프제를 수용하고 전임자 임금 금지에 따른 대비에 발 빠르게 나섰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최근 임단협 과정에서 조합원 자격을 기존 과장급 이상에서 차장급 이상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구했다.
서울메트로 노조는 기금 마련이나 수익사업 등을 통해 재정 자립도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