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낙태 대신 출산, 입양 대신 양육을 선택한 엄마들이 있다.
저출산 시대에 박수를 받아도 모자랄 텐데 이들은 오히려 사회적 편견과 비난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간다.
바로 미혼모들 얘기다.
자신이 낳은 아이를 직접 키우는 것일 뿐인데,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는 물론 가족과 친척의 시선도 싸늘하기만 하다.
학교나 직장에서 쫓겨나고 지금껏 사랑하고 의지해 온 부모 형제마저도 등을 돌리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이들은 온갖 시련을 이기며 아이를 지키고 있다.
미혼모의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미혼모 입양 아동 수 등을 토대로 2만6천여명 정도일 것이라는 추정치만 있을 뿐이다.
분명한 것은 양육을 희망하는 미혼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들은 이제 그늘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유쾌하며 발랄한 싱글맘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점이다.
목경화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대표는 "'왜 낙태나 입양을 안했느냐'고 묻는데, 미혼모라도 '왜 낙태나 입양을 했느냐'고 묻는 게 자연스러워지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내 아이 내가 낳아 키우는 것일 뿐"
5살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미혼모 최미연(37.가명) 씨.
그녀는 남자친구와 헤어진 뒤 임신 사실을 알았지만 아이를 지우지도, 입양시키지도 않았다.
물론 그녀도 다른 미혼모들이 겪었던 고민과 혼란의 순간이 적지 않았다.
"낙태를 하려고 병원에 갔는데 초음파 화면에서 점이 뛰는 게 보였습니다다. 별처럼 반짝이는 점….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이를 낳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최씨는 지방에 있는 부모에게는 차마 알리지 못하고 서울에서 가깝게 지내던 친오빠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격려와 도움이 아닌 '당장 아이를 떼라'는 불호령이었다.
최씨는 "얘기를 듣던 오빠가 잠시 어디 좀 다녀온다고 하더니 30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아 전화를 해봤더니 없는 번호라는 회신이 왔다"면서 "다시 연락이 됐을 때는 만삭이었는데도 낙태할 것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아이를 낳고 나니 이번에는 입양 권유가 쏟아졌다.
최씨도 아이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해 입양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해 낳은 지 하루도 되지 않은 아들을 입양기관에 맡겼다.
하지만 만 하루도 되지 않아 마음이 바뀌었다.
최씨는 "아이를 쓰레기통 같은데 버리고 온 것 같은 죄책감이 너무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입양기관에서 일주일 만에 아들을 되찾아온 최씨는 미용실을 운영하는 등 어렵지만 당당하게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최씨는 "주위에서 아들을 두고 '아빠 없는 아이'라고 하는데 아빠가 왜 없습니까. 아이와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만 아이 아빠와 너무 안 맞는데 굳이 아이 때문에 결혼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그는 "내 아이를 내가 낳아 기르겠다는데 임신한 순간부터 수십 년간 알아온 사람까지 날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 게 너무 싫었습니다. 나의 선택을 후회한 적 없었고 아이가 예쁘고 너무 좋습니다"고 말했다.
◇ 가까운 가족의 이해와 지원이 급선무
미혼모들이 아이를 낳고 육아를 결심하는 순간 가장 무섭게 다가오는 고통이 가족과의 단절이다.
특히 아버지와의 관계가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최씨도 처음에는 그랬다.
그는 "아버지한테 말씀드리니 '넌 더 이상 내 자식이 아니다'라며 집 전화와 휴대전화 번호를 모두 바꿔버리셨다"면서 "원래 어머니보다 아버지와 더 편한 사이였는데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포기하지 않았다.
최씨는 아들이 두 돌이 될 무렵부터 아버지에게 한 달에 한 통씩 진심을 담아 편지를 쓰고 있다.
처음에는 '죄송하다'는 말로만 채워졌던 편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들로 채워지기 시작했고, 진정으로 행복해하는 딸의 모습을 느끼면서 아버지의 마음도 조금씩 움직였다.
최씨는 "여전히 고향 집에 못 가고 아버지께서는 손자를 안아주시지도 않는다"면서 "하지만 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난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
홀로 네 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는 김연정(32) 씨도 미혼모가 된 이후 가족들과 등지고 살고 있다.
김씨는 "아이를 낳고 한 달 뒤 가족에게 말씀드렸더니 계속 입양을 권하더라"라면서 "내가 받아들이지 않자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몇 년 만에 연락이 다시 됐는데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해서 '월세로 사는데 전셋집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어이없게도 아이를 입양 보내면 그렇게 해주겠다고 하시더라"고 토로했다.
목경화 대표도 가족과의 갈등을 겪었다.
목 대표는 "아버지가 딸 교육을 잘못시켰다며 어머니와 이혼 직전까지 갔었다"면서 "하지만 친척 어른들이 '자식 이기는 부모가 어디 있느냐'며 꾸준히 설득했고 이제는 손자를 누구보다도 예뻐해 주시는 분이 아버지"라고 말했다.
그는 "가족이 보살펴주지 않으니 사회 누구도 보살펴 주지 않는다"면서 가족들의 관심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