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일보=취재반]"한평생 전차 소음과 포탄 소리를 벗삼아 포탄과 탄피 등을 수거하며 힘들게 살아왔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할지 눈앞이 캄캄합니다."
연천군 연천읍 고문리 마을과 포천시 관인면 문암마을은 20가구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곳이다. 1960년대부터 인근 사격장에서 포탄과 탄피 등을 수거하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마을을 형성했다.
전쟁의 상흔이 여전했던 보릿고개 시절, 이 마을 주민 800여명은 사격장에 버려진 포탄 등 고철을 수거해 끼니를 해결하고 자식들을 키웠다. 주민들은 군부대 사격이 없는 주말이면 아침 일찍부터 마을에서 6㎞나 떨어진 사격장에 올라가 지게에 각종 포탄과 전차포탄 탄피를 수거해 짊어지고 내려왔다.
최근에는 한번에 60~70㎏의 포탄 탄피를 지고 내려오기를 하루에 두세 차례 반복하면서 한 주에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30만원을 벌었다. 현재 고물상에서 구리 등 고철로 이뤄진 일반 포탄은 ㎏당 500~1천원, 알루미늄이 포함된 전차포탄 탄피는 ㎏당 1천~2천원에 거래되고 있다. 거래선은 주민들만 아는 비밀로 전화를 걸면 곧바로 탄피를 사러 온다.

주민들이 군사시설보호구역인 사격장을 마음대로 오가며 생활할 수 있었던 것은 해당 군부대가 사격장 소음을 참아주는 주민들을 배려(?)했기 때문.
그러나 지난 2006년 12월 이 마을이 한탄강 댐 공사로 수몰지역으로 결정돼 대부분의 주민들이 마을을 빠져 나가면서 더이상 군부대의 배려는 없었다.
지난달 30일 이정수(가명·45)씨 등 마을주민 4명은 사격장에서 포탄을 수거해 나오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고, 같은달 17일 또다른 지역 주민이 경운기에 포탄을 수거해 나오다 초소 근무중인 군인들에게 붙잡히기도 했다.
이후 군부대는 이 마을을 찾아 주민들의 집에 보관중인 포탄 등을 모두 수거해 갔고, 연천군에 협조공문을 보내 출입금지구역 표지판 설치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군부대의 이중적인 태도에 마을 주민들은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주민들은 그동안 지역특성상 군부대와 함께 상생(?)의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배신당했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마을 주민 정인숙(가명·70) 할머니는 "군부대의 사격 소리만 들어도 전차포탄인지, 일반 포탄인지 정확히 구분할 만큼 한평생을 사격장과 함께 생활해 왔다"며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사격장을 드나들며 자식을 키워왔는데, 얼마 남지않은 여생을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또다른 주민 이우석(가명·73) 할아버지도 "산 속에 군이 버린 포탄 등이 방치되면 토양 오염과 자연환경이 파괴되기 때문에 군부대에서도 우리의 출입을 묵인해왔다"며 "때론 불발탄 등으로 다쳐도 '자업자득'이라는 심정으로 군부대를 단 한번도 원망하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포천시 관인면 문암마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마을 끝자락에 이르자 사격장에 무단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경고문과 함께 철조망 문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문 옆으로 2m 정도의 길이 있어 여전히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하다.
이곳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사라졌다. 최근 몇몇 주민들이 사격장에서 포탄을 수거해 나오다 경찰에 연행됐기 때문이다.
주민 오송청(가명·48)씨는 "탄피 수거는 불법이지만 지금까지 군 부대에서 한 번도 단속한 적이 없었다"며 "갑자기 이제 와서 경찰이 단속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황당해 했다.
이 마을 주민들 역시 전쟁 직후의 '보릿고개'를 포탄 탄피 수거 등으로 풍족하게(?) 극복했다고 한다. 그 돈으로 생활했고 자식 교육까지 시켰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탄피 수거가 불법인 줄 알고 있지만 오랜 세월 용인되면서 생업이 된 것이다.
주민 김성수(가명·45)씨는 "사회적 파렴치범도 아닌데 새벽에 경찰이 들이닥쳐 주민들을 체포해 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그리고 만약 탄피 단속을 해야한다면 군부대에서 나오는 것이 정상아니냐"고 반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