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성남시가 지난 12일 지자체 최초로 채무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해 파문을 일으킨 지 일주일을 맞았다.
전임 집행부가 무리한 사업에 끌어다 쓴 판교특별회계의 5천200억원을 당장 갚을 수 없다는 성남시의 선언은 부실한 지자체 재정상황을 들여다보고 개선책을 이끌어내는 긍정적인 효과를 냈다.
그러나 성남시 재정의 어려움을 이해하면서도 빚 상환에 대한 협의도 없이 갑자기 '깜짝 발표'를 함으로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갈등을 초래한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다.
◇ 지자체 첫 '모라토리엄' 선언
이재명 성남시장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전임 집행부가 판교신도시 특별회계에서 전용한 5천200억원을 LH 등에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며 지급유예(모라토리엄)를 선언했다.
한 나라 전체나 특정 지역에서 경제공황 같은 긴급 사태가 발생한 경우에만 주로 쓰이는 '모라토리엄'이라는 단언까지 쓴 선언의 파장은 컸다.
전국 최고의 부자 도시 중 하나로, 재정자립도가 우수한 성남시의 모라토리엄 선언은 신청사 건립같은 무리한 사업으로 빚더미에 앉은 유사한 전국의 지자체 문제를 점검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모라토리엄 선언 다음날 정운찬 국무총리가 "과거 행정처분의 연속성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각 부처는 지자체와 소통을 강화해 지방행정의 합리적 운영이 제고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주문했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인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은 15일 지방재정 일부를 지방채 원리금 상환에 우선 사용하도록 하고, 전시성 사업의 확대를 억제하는 내용의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국회 입법조사처도 지난 16일 '성남시 지급유예선언과 지방재정의 건전화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의회, 주민의 감독을 강화하고 심각한 재정위기를 초래한 자치단체장에게 주민소환제를 적용하기 위한 '지방재정위기관리법' 제정의 필요성도 제기했다.
이같이 쏟아져 나온 지방재정 건전화 방안 등이 얼마나 실효성 있게 추진될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지자체의 방만한 운영과 그에 따른 재정난 위기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온 정부와 사회에 성남시가 충분한 경각심을 주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 '일방 선언' 성남시, 정부.시민과 갈등 초래
성남시가 모라토리엄 선언으로 위기의 지방재정을 건전하게 바꿀 수 있는 사회적 관심을 높이고 제도적 장치 마련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중앙정부와의 갈등을 부각하고 시민에게 위기감을 안겨 준 책임도 있다는 지적이다.
성남시의 지급유예 선언 직후 국토부와 행안부는 "성남시 재정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한데다 모든 돈을 한꺼번에 정산하거나 투자해야 하는 게 아닌데도 사실을 부풀려 주민 불안을 일으키고 있다"고 성남시의 성급함을 지적했다.
국토부나 LH와 사전 협의없이 일방적으로 지급유예를 선언한 배경과 의도를 놓고 민주당 소속인 이 시장이 전직 한나라당 출신 시장의 '실정'을 부각하고 자기공약을 이행하는데 예산을 집중적으로 투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도 분분했다.
성남시민들도 시청 게시판을 통해 '우리가 파산한 도시에 사는 것이냐', '시민의 자존심과 도시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이 시장을 비난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의 파장이 상상외로 커지고 선언의 순수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시장이 직접 나서서 정부의 비판에 반격하고 나섰다.
이 시장은 지난 15일 시청 구내식당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성남시가 사실을 부풀려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한 국토부에 사태의 책임이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판교개발사업의 주무 관청인 국토부가 판교특별회계에서 돈을 빼 쓴 걸 모르고 있었다면 존재 이유가 없고, 알고도 묵인했다면 직무유기이자 공범"이라고 맹비난을 했다.
여기에 성남시의회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갈려 이번 사태의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기며 분열하고 있다.
◇ 모라토리엄 선언의 속내는..사업권 획득?
'한나라당 전임 집행부의 실정 부각으로 이미지 차별화', '대단위 공약 실천을 위한 대정부 압박' 등 이 시장이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속내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나오고 있다.
이 가운데 선언 1주일을 맞은 현재 위례신도시와 고등보금자리주택사업에 참여해 개발이익을 챙기려는 것이라는 것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위례신도시 개발지분은 이미 LH에 75%, 서울시에 25%로 배분돼 있다. 하지만, 이 시장은 지난 지방선거 때부터 위례신도시 사업권 확보를 최대 공약 중 하나로 내걸었다.
사업지구 내 편입면적이 성남시가 41%로 가장 많고 사업 후 도시기반시설 유지관리에도 성남시 참여가 불가피한데 성남시를 사업자에서 배제한 것은 불공평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시장은 중앙정부와의 협의를 통해 위례신도시 사업권과 모든 행정권한을 '반드시' 획득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또 LH가 모든 사업권을 가진 고등지구 보금자리주택사업의 사업권도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이 두 가지 사업에 참여해야만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어 그 돈으로 1공단 공원화사업 같은 이 시장의 공약 사업을 이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성남시가 공식적으로 표명하지는 않았지만 "정부가 위례신도시.고등지구 사업에 참여시키지 않으면 행정협조를 거부하고 권한쟁의심판도 불사하겠다'는 말도 흘러나오고 있어 성남시와 중앙정부와의 갈등은 심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성남시'지급유예' 선언 1주일..남긴 것은
지방재정 위기 점검.대책마련 계기
입력 2010-07-1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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