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성 약사 납치ㆍ살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성북경찰서는 사건 발생 7일 만에 유력한 용의자 2명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동갑내기인 신모(28)와 이모(28)씨는 교도소에서 서로 알게 됐으며 출소한 지 7∼10개월밖에 안 되는 시기에 잔혹하고 대담한 범죄를 저질렀다.

   강도와 성범죄 전과가 있는 이들은 범행 사실을 함구하고 있으나 경찰은 이들이 한모(48.여)씨를 납치하고 살해하기까지 돈을 요구하지 않은 점 등으로 미뤄 성폭행할 목적으로 납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한씨는 납치된 뒤 30분 안에 살해됐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한다.

   용의자들은 한씨의 신용카드로 주유소에서 기름을 구입해 결정적인 증거를 남겼다.

   ◇공조수사로 용의자 조기 검거 = 이번 용의자 검거는 경찰의 빠른 판단과 치밀한 분석에 따라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관할구역을 따지지 않고 진행한 공조수사가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경찰은 차량 화재 사건을 `방화'로 인지하고 차주인이 실종된 것을 신속히 파악한 뒤 살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대적인 수색으로 시신을 찾아냈다. 이후 확보한 모든 단서를 종합해 유력한 용의자를 특정한 뒤 이들을 추적했다.

   한씨는 16일 오후 `가족 모임을 위해 마트에 장보러 가겠다'고 양천구 신정동 집을 나선 뒤 이날 오후 11시40분께 인근의 대형마트에서 라세티 차량을 몰고 나온 뒤 실종됐다.

   한씨의 차량은 17일 오전 3시께 성북구 길음뉴타운 근처 공터에서 전소했으며 한씨는 20일 오후 3시께 서해안고속도로 광명역IC 근처 배수로에서 일부 옷이 벗겨진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17일 오전 경찰은 차량 화재 사건을 접수하고 차적 조회를 해 한씨의 실종사실을 파악했고, 공조수사로 나흘 만에 시신을 발견했으며, 곧바로 성북경찰서에 8개팀, 형사 40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차렸다.

   경찰은 한씨 차량이 찍힌 CCTV를 확보해 용의자들의 이동 경로를 재구성하고 용의자 모습이 찍힌 CCTV 장면을 확보했으며, 이들이 한씨 신용카드로 기름을 구입한 주유소에서 구체적인 증언을 확보하고 강도와 성폭행 등 동종 전과자를 상대로 구체적인 신원 확인에 나섰다.

   용의자들의 인상착의를 파악한 경찰은 통신 조회 기록을 토대로 이들이 중식당에 유난히 자주 통화한 사실을 확인, 목동의 한 중식당에서 23일 낮 12시40분께 이들을 검거했다.

   ◇출소 1년도 안돼 `막가파식 범죄' = 용의자들은 성폭행으로 4~5년간 복역하고 출소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이씨는 건물 엘리베이터 안에서 여성을 성폭행해 4년간 복역하고서 지난해 9월 출소했고, 신씨는 카페에서 강도와 성폭행을 저질러 4년6개월간 복역한 뒤 작년 12월25일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소 이후 함께 생활해 온 용의자들은 최근까지 목동의 한 중식당에서 배달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해 왔다.

   경찰은 이들이 한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뒤 주유소에 들러 휘발유를 구입해 차량을 태워 증거를 없애려 한 점 등으로 미뤄 범행을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현재 범행 동기나 수법, 시신 유기 과정에 대해 함구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이들이 저지른 추가 범행이 있는지 조사 중이다.

   ◇이번에도 CCTV가 결정적 역할 = 경찰은 한씨의 라세티 차량 번호를 파악하고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에 설치된 CCTV를 통해 용의자가 이동한 동선을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용의자들은 양천구의 한 지역에서 한씨를 납치한 뒤 한씨 차량을 몰고 광명역IC 부근으로 가 시신을 유기하고 과천시내 한 주유소에 들렀다가 오후 3시께 성북구 길음뉴타운 인근에서 한씨 차량을 태우고 도주했다.

   CCTV에 한씨가 마지막으로 찍힌 것은 지난 16일 밤 11시40분께 양천구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본 뒤 차를 몰고 나서는 모습이었다.

   이후 한씨 차량이 찍힌 CCTV 장면이 17일 오전 0시30분께 광명IC 부근, 오전 2시께 과천의 한 주유소 부근 등에서 확보됐다.

   경찰이 확보한 CCTV 장면 여러 개는 대부분 주변이 어두워 인상착의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용의자가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 있는 한 장면은 평소 용의자를 아는 사람이라면 식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용의자들이 새벽에 기름을 구입했고 팔에 문신이 있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인상착의를 뚜렷하게 기억한 주유소 직원의 진술도 용의자 검거에 큰 도움이 됐다.

   경찰은 현재 용의자들이 `뉴스 봤나. 앞으로 그런 짓 말자'라고 주고 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와 용의자가 CCTV 장면에 찍힌 목걸이를 하고 있는 점 등 여러 정황 증거를 확보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