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규 (경제부장)
[경인일보=]경술국치(庚戌國恥) 100년을 맞았다. 돌이키고 싶지 않은 과거지만 간 나오토 일본총리가 지난 8월 10일 한국인의 뜻에 반하는 36년간의 식민지배는 잘못됐다는 점을 인정하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로 새로운 100년을 열자는 제안을 동시에 담은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문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관계개선을 모색하는 진지한 노력을 보였다는 점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독도문제를 비롯한 역사교과서 왜곡 등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일본의 진정성에 따라 산뜻한 한일관계 개선이 요원하지만은 않을 수 있다.

1910년 8월 22일. 조선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마지막 어전회의를 연 날이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이완용 총리대신은 일본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조선총독에게 달려갔고, 한일합병 조약이 조인됐다. 조약이 체결된 뒤에도 일제는 우리 민족의 저항을 두려워하여 당분간 발표를 유보했다. 조약체결을 숨긴 채 정치단체의 집회를 철저히 금지하고, 또 원로대신들을 연금한 뒤인 8월 29일에야 순종으로 하여금 양국(讓國)의 조칙을 내리도록 했다. 8개조로 된 이 조약은 제1조에서 "한국 황제 폐하는 한국 전체에 관한 일체 통치권을 완전히 또 영구히 일본 황제 폐하에게 넘겨준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로써 519년을 이어온 조선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우리민족은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게 됐다. 이로부터 꼭 100년이 지난 2010년 8월. 한국은 G20 정상회의 개최 의장국으로 전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G20 정상회의 유치를 일궈낸 이명박 대통령은 돌아오는 기내에서 수행원들과 만세를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시아 국가 최초로 유치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한 나라의 수장을 이토록 기쁘게 했던 G20 정상회의의 목적과 의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일반인들은 얼마나 될까?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G20 한국 개최에 따른 경제적 파급 효과와 국가브랜드 제고 효과가 1988년 서울올림픽에 버금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지만, 그와 달리 일반 국민의 반응은 무덤덤한 게 현실이다. G20 성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이미 1차 재무차관회의가 인천 송도에서 열렸고, 2차 재무차관회의와 중앙은행 부총재회의가 9월 광주에서 열릴 예정이며 사전교섭대표회의가 9월 서울, 10월 인천 송도에서 연이어 개최된다. 중앙은행 총재회의도 10월 경주에서 예정돼 있다. 이처럼 G20정상회의가 수도 서울에서 전세계 VIP들만 참석하는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G20 주요각료와 경제인들이 한국의 주요도시를 직접 방문하는 등 지역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명실상부한 초매머드급 국제행사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열린 대규모 국제회의로는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있다. 2000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ASEM 회의는 26개국 정상과 수행원 등 4천700여명이 참석했고,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회의는 7천100명에 달했다.

오는 11월 열릴 G20 정상회의 참가국은 20개국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지만 참석자 규모는 최대가 될 전망이다. 정부 관계자는 "오바마 대통령을 따라오는 미국 측 대표단과 경호팀 등 수행단 규모만 1천명에 달하고 주요국 정상들의 수행원도 국가당 최소 200명 이상이 될 것"이라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참석자, 1천여명의 각국 취재진 등을 합칠 경우 정상회의 참석자 수는 1만명을 훌쩍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여기에 정상회의에 앞서 각료회의, 재무장관회의, 준비기획단 회의 등 수십차례의 회의가 열리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인원은 2만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러나 이토록 중요하고 한국의 국격(國格)을 몇단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G20정상회의가 신흥국 첫 유치에 만족해 그저 관행적인 행사로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대국민 홍보가 미약하고 손님을 맞을 채비가 덜 돼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부터라도 화려한 의전, 쏟아지는 카메라 플래시,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지 못하는 관계자들만의 성공적인 행사가 아닌 전국민이 마음으로 응원하는 기획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계인의 가슴에 대한민국이라는 러브마크를 남기고, 국가 브랜드 가치를 높이려면 무엇보다 감동적인 한국이야기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