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치아픈 낙농업에서 하루빨리 손을 떼야하는데 그럴 수도 없어 속만 타들어 갑니다.”
 
화성시 남양동에서 30마리의 젖소를 키우고 있는 박주환(55)씨는 “낙농업을 시작한 이래 20여년간 여러 고비를 넘겨봤지만 이번같이 힘든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봉담읍 상1리에서 12마리의 젖소를 키우며 생활하고 있는 이정철(44)씨도 “시중에 분유는 남아돌고 우유소비는 줄고 물가는 뛰는 아찔한 상황에서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볼멘소리를 냈다.

분유재고 누적 이후 국내산 분유값은 제조원가의 3분의1 수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낙농업계가 시장붕괴에 대한 우려감에 사로잡혀 있다.

우유소비가 감소하고 있는 반면 우유생산량과 분유재고량, 유제품 수입이 꾸준히 늘어난 결과다. 이 영향으로 낙농가를 포함한 유제업체 모두는 총체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으며 그 후유증은 국내 분유의 과잉적체로 나타나고 있다.

낙농진흥회가 집계한 현재 국내 분유재고는 적정수준(4천t 정도)의 4.5배 규모인 약 1만8천15t.

넘치는 재고로 제때 소비가 안된 과정에서 발생한 기회손실액만도 약 850억원대에 이른다고 진흥회는 밝히고 있다.

진흥회는 최근 자체 보유한 탈지분유 4천230t의 42%인 1천770t을 딜러(시중 중간상)들에게 t당 230만원의 헐값에 처분했다고 밝혔다.

업계관계자는 “남는 우유를 탈지분유로 가공하는데 톤당 700만원정도가 들어가는데 최근 국내산 분유시세는 t당 250만~270만원정도가 고작”이라며 “적자폭을 감수해야 하는 업계의 어려움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소비라도 늘어난다면 최악의 궁지에서 벗어날 수 있겠으나 상황은 그렇지 못해 분유값 하락세는 더욱 가파른 내리막길을 달리고 있다.

이는 유가공업체들의 경영을 압박하는 위협적인 요소가 되고 있으며 그 불똥은 다시 낙농가로 튀어 이들 생계를 위협하는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만들고 있다.

업계불황은 급기야 낙농가들의 납품물량을 규제하는 쿼터제 실시란 절박한 상황으로까지 급변했다.

낙농업계의 물량 쿼터제란 낙농가가 생산하는 계약물량 이상의 원유는 약정가의 반값으로 집유가격을 낮춰 지불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생산량을 꾸준히 늘리려고 애써온 낙농가들에게는 당연히 불리한 결과다. 집유가 인상을 희망하던 낙농가들은 생산의지가 일순간 꺾이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낙농가가 생산해 유가공업체에 납품하는 집유가는 ㎏당 600원을 넘기기가 어렵다. 이 가격은 벌써 2~3년째 거의 꼼짝하지 않고 있다. 집유가의 현실화를 염원하던 낙농가들의 희망이 개선되기는 커녕 최근의 분유 과잉적체로 인한 분위기로 점점 불리한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특히 낙농가들은 집유대금을 분유로 지급하거나 일정액수의 외상제를 도입할지 모른다는 등의 공공연하게 떠도는 소문의 진위여부에 크게 긴장하고 있다.

Y업체에 우유를 납품하고 있다는 박씨는 “쿼터제 도입으로 2달간 시달려 왔는데 오는 10월께 재계약을 앞두고 외상설 등의 루머가 현실로 나타날까 걱정”이란 우려감을 표시했다.

그는 이어 “낙농업에 종사하는 농가마다 빚을 안진 농가가 없는데 살아날 희망마저 안보이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걱정”이라며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국내 낙농업 붕괴는 시간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