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조선노동당 대표자회를 통해 현대사에서는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의 기반을 다지려 하고 있다.

   공화국을 표방하는 현대국가에서도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는 일은 있었지만, 3대에 걸쳐 권력이 세습되는 것은 현대 세계정치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물론 중국을 비롯한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권력 세습을 중세 봉건왕조시대의 유물로 치부하며 비판적인 시각을 숨기지 않고 있다.

   다만, 군주제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모로코 등에선 아직 권력 세습이 법으로 보장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동안 부자 정권세습을 시도하거나 실제로 성공한 나라는 독재국가들뿐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제이슨 브라운리가 1945년부터 2006년까지 3년 이상 집권한 258개 독재국가에서 권력세습 사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모두 23차례 권력세습이 시도됐고 성공한 경우는 9차례였다.

  
◇ 권력세습 이뤄지는 '독재공화국'
지난 2005년 토고에서는 38년 집권하며 아프리카 최장기 독재자 기록을 세웠던 에야데마 그나싱베가 심장마비로 급사하자 아들 파우레 그나싱베가 군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직 승계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민주화를 외치며 반발하는 국민과 아프리카 주변국들의 압력으로 대선을 치르게 됐지만, 결과는 파우레의 당선이었다. 그는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1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기도 했다.

   카스피해 서부 연안의 국가 아제르바이잔에서는 2003년 게이다르 알리예프 대통령의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가 부정·불법선거 논란 속에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알리예프는 아버지가 10년간의 철권통치를 펴는 동안 국영 석유회사(SOCAR) 부회장, 국회의원, 총리를 거치며 후계자 수업을 받았고 아버지 사망 후에는 재선에 성공하며 권력을 공고히 했다.

   알리예프는 지난해 3월 대통령 5년 연임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개헌안을 국민투표를 통해 통과시켜 종신 집권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왕정이 아닌 아랍국가에서 부자 권력세습의 선례는 시리아의 하페즈 아사드 전 대통령이 남겼다.

   무혈쿠데타를 거쳐 1971년 집권, 30년 동안 시리아를 철권통치한 아사드가 2000년 심장마비로 사망하자 차남 바샤르 알 아사드가 35세의 나이에 대통령에 올랐다.

   원래 아사드는 장남인 바실을 후계자로 지목했지만 바실이 1994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영국에서 유학 중이던 바실을 국내로 불러들여 후계자 과정을 밟도록 해 권좌를 물려줬다.

   북한에서는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자 아들 김정일이 권력을 승계했다. 김정일은 1974년 후계자로 내정된 이래 20년 동안 권력승계를 위한 일련의 과정을 차근히 밟으며 권좌에 올랐다.

   이밖에 2004년 싱가포르에서 리콴유가 아들 리셴룽에게, 1975년 대만의 장제스가 장징궈에게, 1971년 아이티에서 프랑수아 뒤발리에가 아들 장클로드에게 정권을 물려줬고, 1961년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1956년엔 니카라과에서 각각 권력 세습이 이뤄졌다.

   동생에게 권력을 이양한 사례도 있다.

   1959년 쿠바혁명을 이끌며 2006년 7월까지 47년간 쿠바를 통치한 카스트로는 장 출혈로 수술을 받은 뒤 2006년 7월 병으로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국가평의회 의장직을 넘겼고, 2008년 2월엔 정권을 완전히 이양했다.

  
◇ 세습을 준비 중인 정권들
멀지 않은 시간 안에 정권의 부자 세습이 예상되는 나라도 있다.

   이집트에서는 현 호스티 무바라크 대통령의 차남 가말(47)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 권력을 넘겨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현재 집권당인 민족민주당(NDP)의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가말은 4차례 국민투표와 1차례 대선을 통해 29년째 정권을 잡고 있는 아버지 무바라크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어, 세습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이를 극복하고 정권을 세습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리비아에서도 아랍권 최장수 집권자인 카다피가 자신의 차남 사이프 알-이슬람(38)을 후계자로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프 알-이슬람은 현재 리비아에서 영향력이 큰 비영리 단체 '카다피 재단'을 이끌고 있다.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3남 김정은에게 권력을 이양하기 위해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세습 과정이 순탄할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리지만,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3대 세습'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된다.

  
◇ 전문가 "북한 권력세습 체제에 더 안정적"
서정민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아들에게 권력을 승계하려는 이집트도 내부의 반발이 있지만, 1981년부터 장기집권 중인 정부의 조직적인 탄압과 방해로 반발세력의 영향력 행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 교수는 "기득권을 가진 내부 핵심층의 이해도 권력교체보다는 정권세습과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다"면서 "북한도 수십 년간 다져온 틀이고 다른 대안을 내부에서 합의하기도 쉽지 않아 세습이 가장 쉬운 정권 이양 방법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남북협력연구센터 선임연구위원은 "권력세습이 일어나는 것도 나름대로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에서의 권력 세습으로 급변사태나 위태로운 현상이 발생하기보다는 오히려 체제에 더 안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연구위원은 "이번 당 대표자회는 독재자의 결정을 합리화시키는 요식행위 수단에 불과할 것"이라면서 "이미 한번 세습이 이뤄진 북한의 경우 세습이 성공할 확률도 높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독재국가에서 정권을 세습하는 경우도 있고 정치가문의 세습 사례도 있지만, 북한과 같이 3대에 걸쳐 세습이 이뤄진 경우는 유례가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