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의 '명분'이냐 현대기아차그룹의 '자금력'이냐?
 
   24일 외환은행 등 9개 기관으로 구성된 채권단(주주협의회)의 매각 공고로 현대건설 인수전이 본격화하게 됐다.
 
   현대건설 인수전은 그동안 인수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혀온 현대그룹과 이날 매각 공고에 맞춰 인수의향서 제출 계획을 밝힌 현대기아차그룹의 2파전이 예상되고 있다.
 
   채권단은 '흥행'을 위해 제3의 기업이 참여할 가능성을 열어뒀지만, 제3기업들은 현대가(家)의 모태기업인 현대건설을 인수하겠다고 선뜻 나서지 못하는 형국이다.
 
   업계에서는 인수의향서 제출기한인 내달 1일 현대건설 인수에 참여할 기업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 현대건설 모습. (사진=연합뉴스)

   ◇현대그룹의 '명분'에 힘 실릴까 =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매각 공고를 앞두고 지난 21일부터 TV광고를 통해 '여론전'을 펼치는 중이다.
 
   현대그룹은 광고를 통해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고 정몽헌 회장에게 현대건설을 물려줬고, 정몽헌 회장이 생전에 경영난에 빠진 현대건설을 살리고자 사재 4천400억원을 출연했던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하려는 것에 대해 "잃었던 기업을 되찾는 것"이라고 밝힐 만큼 인수 명분이 뚜렷하다.
 
   현대그룹은 건설사 인수가 그룹 내 다른 사업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것도 강점으로 제시하고 있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지금은 중단된 상태지만 30년간 대북사업 독점권을 가진 현대그룹은 현대건설을 인수함으로써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개발에서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계열사인 현대상선은 해외건설사업을 위한 건설자재 운송 등에서, 현대엘리베이터는 건설 관련 분야여서 사업 시너지를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그룹은 현금성 자산 1조5천억원 정도를 확보한 상태여서 현대건설 인수를 위한 자금조달에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현대건설 보유주식 약 4천277만4천주(총 발행주식수 대비 38.37%) 가운데 3천887만9천주(34.88%)를 매각하기로 했으며, 이는 경영권 프리이엄을 포함해 약 3조5천억~4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대그룹은 과거 금호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할 때 대금 규모가 6조5천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현대건설 인수대금 규모가 큰 것은 아니라며 전략적 투자자와 재무적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매각공고를 앞두고 지난 21일부터 방영하기 시작한 TV광고를 통해 작고한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부자의 흑백사진을 잇따라 보여주며 현대건설에 대한 연고권이 현대그룹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현대기아차그룹, 탄탄한 '자금력'으로 공략 = 그동안 현대건설 인수와 관련해 공식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현대기아차그룹은 오는 29~30일께 현대건설 입찰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공식화할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고위 관계자는 24일 "10월1일 의향서 제출에 앞서 입찰 참여를 공식화할 것"이라며 "현재 발표할 문구를 정리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현대건설을 글로벌 종합엔지니어링사로 키우고자 하는 경제 논리에 의해 인수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이라며 "누가 현대건설을 기업가치에 맞는 세계적인 기업으로 키울 수 있는지를 시장과 국민이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그룹은 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를 인수자문사로, PwC삼일회계법인을 회계자문사로 각각 선정해 인수를 위한 물밑작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그러나 현대건설 인수가 정의선 부회장의 승계구도와 관련이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업계 일각에서는 정 부회장의 현대기아차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현대건설을 인수한 뒤 현대엠코와 합병해 주식시장 상장 등을 통해 대규모 현금을 확보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를 제기해 왔다.
 
   현대차그룹은 이에 대해 정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현대엠코가 이번 인수전에 전혀 참가하지 않는데다 현대건설을 인수하더라도 엠코와 합병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밝혔다.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은 종합 엔지니어링사인 반면 엠코는 시공사로 사업영역이 달라 합병 가능성을 낮게 본다"며 "이번 인수를 정 부회장의 승계구도와 연결지어 보는 시각은 상당히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 부회장 역시 이번 인수전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고 기업 인수합병(M&A) 전문가들이 전면에 포진해 있다고 현대차 관계자들은 전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 인수전이 본격화하면 4조원이 넘는 풍부한 현금성 자산을 동원해 우위를 확보할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 현대건설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3기업 참여할까 = 채권단은 "별도의 입찰 제한 요건을 두지 않고 입찰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 기업은 누구라도 참여시킬 것"이라고 밝혔지만, 제3의 기업이 인수전에 참여할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현대가(家)의 모태 기업인데다 인수 후에 '현대'라는 브랜드를 계속 써야 하는 부담 때문에 제3기업이 인수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현대중공업이 인수한 현대종합상사가 매물로 나왔을 때 STX그룹이 "현대가에서 인수하지 않으면"이라며 조건부로 인수전에 참여하려 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현대건설 인수전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그러나 업계 일각에서는 현대건설의 브랜드 가치와 기술력 측면에서 매력적인 기업이기 때문에 주시하고 있는 국내외 기업체가 많음을 들어 의외의 기업이 인수전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