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피해자가 투신해 숨졌더라도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다면 가해자에게 사망의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6부(배광국 부장판사)는 성폭행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겁에 질린 피해자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이모(15) 군의 강간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0일 밝혔다.

   재판부는 "폐쇄회로(CC) TV 화면과 진술 등을 종합하면 이군이 피해자 A양(14)을 추행하고 자위행위를 한 뒤 현장을 떠났으므로 투신 당시 A양은 급박한 위해상태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어린 소녀가 추행을 당한 수치심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결과일 가능성이 있는 점 등에 비춰보면 비록 추행 직후에 뛰어내린 것이더라도 이군으로서는 A양이 추가 피해를 막으려고 창문을 넘어 추락, 사망에 이르리라는 점을 예측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공소사실 중 A양을 겁줘 돈을 빼앗고(공갈) 추행한 혐의(아동ㆍ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와 인근 식당에서 금품을 훔친 행위(특수절도)는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이같이 판결하면서 이군이 최대 2년간 징역살이를 하되 복역 1년6개월 이후에는 태도와 반성하는 정도 등을 감안해 조기 출소할 수도 있도록 했다.

   재판부는 "사망을 예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강간치사죄가 성립하지 않지만, 결과적으로 A양이 충격을 이기지 못해 사망한 점, 유족과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이군은 올해 5월 서울의 한 아파트 23층 비상계단에서 A양을 추행하고 이어 성폭행을 시도하다 겁에 질린 A양이 창문을 통해 뛰어내려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