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신설법인 'GM-대우차'가 17일부터 업무를 개시했다.
이에 따라 대우차는 ▲GM-대우차 ▲인천대우차 ▲부산 대우버스 ▲군산 대우상용차 ▲해외법인을 포함한 대우차 잔존법인 등 5개사로 분할돼 '대우자동차'란 이름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대우차의 역사는 모험과 좌절로 점철된 우여곡절의 연속이었다. 대우차는 50년대 미군 차량을 개조해 팔던 '신진자동차'가 모태다. 새나라자동차를 인수한 뒤 부평공장에서 도요타의 코로나 등을 조립 생산하던 신진은 70년대 초만 해도 국내 1위 자동차업체였다.
72년 도요타의 철수 이후 50%의 지분을 인수한 GM과 손잡고 'GM코리아'로 회사 이름을 바꿨으나 GM의 모델 시보레1700을 들여다 조립하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오일쇼크로 현대의 포니와 기아의 브리사를 당하지 못한 채 76년 산업은행관리체제로 넘어가자 다시 간판을 '새한'으로 바꿨고 대우가 78년 산은의 보유지분을 인수한 뒤 82년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대우차가 탄생했다.
그러나 과도한 무이자할부 판매와 차입경영으로 허점이 생긴 가운데 97년 12월 쌍용차를 인수하는 모험을 또다시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무리한 해외투자는 99년 8월26일 대우 계열사까지 끌어들인 동반 워크아웃으로 이어지고야 말았다.
대우차는 최종 부도후 지난 2000년 11월10일 법정관리 개시 신청을 냈고 노사가 극적으로 노사협의회 합의문에 합의, 같은 달 30일 법원에 의해 법정관리 개시 결정이 내려졌다. 이어 GM으로의 매각을 전제로 9천992억원의 자구계획을 마련해 강도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가 인력을 7천300여명 줄였으며 이 과정에서 부평공장 생산직 1천750명이 강제로 거리로 내몰리는 최대 규모의 정리해고가 단행되기도 했다.
GM이 9월21일 양해각서(MOU)에 이어 올 4월30일 본계약을 체결한 후에도 진통은 끊이지 않아 최근엔 대우차 협력업체들이 부품공급을 중단, 공장가동이 마비되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이같은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GM-대우차'는 본사는 부평에 두고 서울사무소는 종로에 둘 예정으로 11월 중순 누비라 후속 모델인 신차 'J-200'(프로젝트명)을 출시하고 내수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면서 본격적인 영업에 나설 계획이다.
대우차 몰락에서 신설법인까지
입력 2002-10-17 00:00
지면 아이콘
지면
ⓘ
2002-10-17 0면
-
글자크기 설정
글자크기 설정 시 다른 기사의 본문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가
- 가
- 가
- 가
-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