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그룹, 한화, C& 그룹 등 검찰의 대기업에 대한 사정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속도가 붙으면서 재계가 검찰의 '칼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삼성, 현대, SK, LG 등 재계 전방위에 걸치면서 '차떼기'라는 유행어를 낳은 2004년 대검 중수부의 대선자금 수사를 떠올리며 이번에도 검찰발 폭풍이몰아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내놓았다.
당시 이들 기업의 총수를 비롯한 핵심 인사들이 줄줄이 검찰이 소환돼 10여명이기소되는 수모를 겪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21일 "최근 증권가 정보지 등에 우리 그룹의 이름이 '검찰 리스트'에 올랐다는 소문이 돌아 회사 내부에서도 그 배경과 진위를 가리고 있다"며"태광그룹 수사를 보면 예전과는 강도가 다른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른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대통령의 '공정사회론'과 맞물려 2004년 대선자금 수사에 버금가는 대기업 수사가 진행되지 않을까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현재 기업풍토에서 '마음먹고 털면 먼지 안 나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했다.
현재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받는 태광그룹 관계자는 "검찰의 수사가 예상밖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돼 그룹에서도 당혹스러운 분위기"라며 "추측성 보도까지 쏟아져일일이 대응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롯데그룹은 계열사인 롯데건설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고 있어 더욱 긴장하는분위기다.
롯데건설 측은 "세무조사 배경은 알지 못한다"고 밝혔으나 조사를 맡은 국세청 조사4국이 특별 세무조사를 전담하는 부서이고 많은 인력이 투입된 만큼 비자금 조성이나 재개발 관련 비리에 대한 특별조사일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롯데 관계자들은 이번 세무조사나 검찰의 대기업 수사 움직임에 대해 말을 아끼면서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세무조사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추측성 보도만 있었을 뿐이지 조사내용이나 배경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며 "검찰 수사에 대해서도 그룹 내부에서 다들 말을 꺼내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비자금 의혹에 관해 검찰 조사를 받는 한화그룹은 "검찰에 적발된 차명계좌는 김승연 회장이 선대에서 물려받았으나 미처 실명화하지 못한 상속재산이며 불법비자금은 아니다"는 입장이지만 검찰 수사가 어디로 튈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이들 기업 이외에도 재계 10위권 기업 한두 곳이 추가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랐다는 설이 나돌면서 재계는 전에 없이 뒤숭숭한 분위기다.
검찰 고위관계자는 "'스폰서 검사' 위기를 거치면서 실추된 국민적 신뢰와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대검이 대기업 관련 수사 정보를 상당히 광범위하게 수집해 일선 지검으로 배당한 것으로 안다"고 말해 대기업 수사가 폭넓게 고강도로 진행될 것임을 시사했다.
검찰의 대기업 사정수사가 본격화하면서 재계는 상황을 주의깊게 살피면서도 중소기업 동반성장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 최근 정부와 여론의 요구에 더 적극적으로 응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A그룹의 한 임원은 "정부의 상생협력 정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은 재계상위권의 B그룹이 다음 타깃이 될 것이라는 소문을 들었다"면서 저마다 몸사리기에 바쁜 재계의 분위기를 전했다.
일부에선 사정당국의 대기업 수사로 자칫 정상적인 기업활동까지 움츠러들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놓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검찰 사정이 기업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부작용도 있지만 그렇다고 경제 논리만 따라 비리 수사를 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이는 양날의 칼로 옳다 그르다를 말하기가 참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전무는 "기업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제 시작단계여서 구체적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며 "재계는 수사진행 상황이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