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이 자진 사퇴 결심을 굳힘에 따라 향후 수습 과정이 주목되고 있다.

   오는 30일로 예정된 이사회에서 라 회장의 사퇴가 기정 사실화되고 있지만, 대표이사 직무대행 선임 등 수습 방안이 매끄럽지 처리되지 않을 경우 라 회장의 사퇴 시기가 다소 늦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라 회장 사퇴 기정사실화
27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라 회장은 최고경영자로서 최근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자진해서 사퇴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힌 것으로 알려졌다.

   라 회장은 이날 열린 정례 최고경영자(CEO) 미팅에서도 새로운 사람이 오면 계열사 사장들을 중심으로 잘해 달라고 당부했다. 새로운 체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조만간 사의를 표명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라 회장은 자신의 사퇴로 신한금융 사태가 조기에 해결되고 조직이 안정될 것이라는 확신이 설 경우 30일 이사회에서 바로 사의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라 회장이 대표이사 회장직을 사퇴하더라도 주주총회가 열리는 내년 3월까지는 등기이사 직을 유지할 수 있다.

◇직무대행 체제에서 후계구도 모색
신 사장의 직무가 정지된 상태에서 라 회장마저 대표이사 회장직을 사퇴하면 신한금융 이사회는 이사 중 한 명을 대표이사 대행으로 선임해야 된다.

   대표이사 대신 중립적 외부 인사에게 집행임원인 회장 대행을 맡기자는 주장도 있지만, 각종 계약과 법적 소송, 이사회 참석을 통한 의결권 행사 등을 할 수 없는 회장 대행으로는 조직 안정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이사 대행으로는 류시열 비상근이사가 적임자로 꼽히고 있다. 류 이사가 옛 제일은행(SC제일은행) 행장과 은행연합회장 등을 역임한데다 오랫동안 신한금융 사외이사와 비상근 사내이사를 맡아 와 신한금융 내부는 물론 은행권 전반에 대한 이해가 깊기 때문이다.

   대표이사 대행은 내년 3월 주총 때까지 한시적으로 조직을 이끌면서 후계구도를 수립할 것으로 보인다.

   차기 최고경영진 후보로는 이인호 전 신한금융 사장과 최영휘 전 사장, 홍성균 전 신한카드 사장, 고영선 전 신한생명 사장(현 화재보험협회 이사장) 등 지주 및 계열사 전 사장들이 거론되고 있으며, 현직에서는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과 이휴원 신한금융투자 사장, 서진원 신한생명 사장, 최범수 신한금융 부사장, 위성호 부사장 등도 자의와 무관하게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

   외부 전문가 출신으로는 류 이사와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가 거론되며, 경제관료 출신으로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외에 KB금융 회장 후보였던 김석동 전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 전신) 차관, 이철휘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도 거론되고 있다.

  
◇수습방안 처리 등 변수
대표이사 대행 선임 등 조직 안정 방안에 대해 이사들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라 회장의 사퇴가 지연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일부 재일교포 주주들이 라 회장과 가깝다는 이유로 류 이사의 대행 선임을 반대하고 있어 이사회에서 대행 선임 안이 통과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사회에서 대행 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은 채 결정을 연기한다면 라 회장도 사퇴를 잠시 보류할 가능성이 있다.

   신상훈 사장과 이백순 행장 간 화해가 이뤄지지 않은 점도 라 회장에게 부담될 것으로 보인다.

   신 사장과 이 행장은 전날 신한금융 본사에서 만나 서로 안부를 묻고 소송 준비 등에 최선을 다하자며 격려했지만, 자진 사퇴나 고소 취하 등 타협안은 도출되지 않았다. 라 회장이 이날 5분여간 신 사장과 이 행장을 만나 밖으로 분열된 모습을 보이지 말고 조직 안정을 위해 잘하라고 당부했지만, 양측 간 화해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신 사장은 고소인인 이 행장이 먼저 사퇴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라 회장이 사퇴하더라도 동반 사퇴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행장 역시 배임 및 횡령 혐의로 고소된 신 사장이 사퇴해야 고소 취하가 가능하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사장과 이 행장 거취 결정의 바로미터가 될 검찰의 신 사장 기소 여부 결정이 지연되면서 양측 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 대표이사 대행 선임 이후로도 조직 불안이 지속될 수 있다. 이 경우 라 회장이 신한은행 창립 이후 줄곧 공을 쏟았던 관치 개입 차단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다.

   라 회장이 사퇴하더라도 금융당국이 라 회장이나 직원들에 대한 징계 수위를 낮추지 않을 경우 스스로 혐의만 인정하는 꼴이 되는 점도 관치금융 못지않게 라 회장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라 회장은 자신이 30년간 성공적으로 일군 신한금융 조직에 해가 되지 않기 위해 30일 이사회에서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힐 생각인 것으로 안다"며 "그러나 대표이사 대행 선임안 부결이나 신 사장과 이 행장 간 갈등 가능성 등이 떠나려는 라 회장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