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악몽이라면 빨리 깨어나고 싶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의 도발을 눈만 뜨면 사라질 악몽쯤으로 여겨왔다. 북한의 해상도발을 그렇게 꿈에서 깨듯 간단하게 잊었다. 1, 2차 연평해전을 되돌아보면 그렇다. 1차 연평해전은 우리가 압도적으로 승리했지만 승리의 영광이 없었다. 교전을 지휘한 함대사령관은 야전에서 쫓겨나 작전과 군수분야를 전전하다 전역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끈 야전사령관을 창고지기로 보낸 것이다. 2차 연평해전은 아예 잊어야 할 전쟁으로 치부됐다. 남북 해군이 각각 수십명의 사상자를 낸 전쟁의 포성이 월드컵의 함성과 열기에 묻혔다. 전쟁영웅들은 그들의 부대에서 조용히 우리 곁을 떠났다. 한 전사자의 미망인은 그런 조국이 야속해 조국을 떠났었다. 그리고 천안함. 수병 40명이 사망하고 6명은 수중고혼이 됐다. 다국적 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어뢰공격으로 결론지었다. 그러나 우리 내부는 합조단의 증거들을 부인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여전히 높다.
왜 이럴까. 승전을 기리지 못하고, 전사자의 미망인이 조국을 등지고, 증거와 정황이 딱 하나의 범인을 드러냈는데도 지목하기를 망설이는 이런 현상이 왜 벌어지는 것일까. 공포 때문이다. 남북 전면전에 대한 집단공포 말이다. "그러면 전면전을 하자는 얘기냐?" 대한민국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강력한 주문이다. 우리는 전면전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앗아갈 것이라는 집단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나라와 국민의 형편이 나아질수록 공포감은 비례해서 커졌다. 그래서 북한의 작은 도발들을, 반복되는 악몽쯤으로 치부하고 다시 일상에 전념하는 무의식적 반응이 체질화됐다.
하지만 과연 남북간의 전면전은 가능한가. 먼저 우리가 북침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북한은 전면전이 가능한가. 북한이 전면전을 벌였으면 벌써 여러 차례 기회가 있었다. 12·12 쿠데타와 광주항쟁 때다. 전선의 군인이 쿠데타에 동원되고 쿠데타 세력과 민주 세력이 시가전을 벌인 그때 말이다. 또 시민들이 모두 일어나 직선제 개헌을 요구했던 6월항쟁 때도 있다. 당시엔 우리 군사력이 지금에 비해 훨씬 열악했을 시절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미국의 핵우산을 두려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는 전면전 자체가 북한에도 재앙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북한이 핵무장을 강조하고 실행하는 것도 대칭전력으로는 김씨왕조를 자위할 자신이 없어서 아닌가. 걸핏하면 남한을 향해 '괴멸적 타격'을 협박하지만, 필요할 때만 제한적인 국지도발을 반복하는 것도, 전면전만큼은 북한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공포는 개인과 집단의 자위본능을 말살한다. 공포를 극복해야 도발에 반사적·자동적·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공포에 사로잡힌 상대만큼 갖고 놀기 좋은 노리개도 없다. 전면전을 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적의 어떠한 도발 의지도 압도할 수 있는 응전의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 사이에 도발과 응전, '의지(意志)의 대칭'만 분명해져도, 북한은 우리를 함부로 도발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모든 진영이 공포감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하나가 돼야 할 때이다. 대북 정책의 선후를 다투는 것은 그 다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