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축산과학원 직원들이 숙박을 하기 위해 덮을 이불을 옮기고 있다. 과학원 직원들은 구제역으로부터 '씨가축'을 지키기 위해 설에도 집으로 가지 못하고 비상근무를 하며 명절을 보낸다. /농촌진흥청 제공

[경인일보=민정주기자]'방주를 지키는 노아의 심정으로 설을 지내겠습니다'. 긴 추위 끝에 포근한 설 명절이 다가와 온 국민이 귀성의 설렘을 만끽하고 있는 가운데 구제역으로부터 '씨가축'을 지키기 위해 특별한 설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의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에서 일하는 130여명의 직원들은 이번 설을 다같이 과학원안에서 보낸다. 이들은 지난달 3일부터 과학원에서 기르는 우량 품종의 한우, 젖소, 돼지 1천여마리와 닭 800여마리의 씨가축이 구제역에 감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 외부 접촉을 완전히 차단한채 한달째 감금(?)생활을 하고 있다. 가족이 면회를 와도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멀찍이서 안부를 물어야하고 택배도 구제역 발생지역에서 온 것은 반송시켜야 한다. 숙식도 편할리 없다. 샤워공간도 부족하고 빨래 널 곳도 없다. 잠은 사무실 바닥에 스티로폼을 깔고 잔다. 이러니 감기가 걸리면 낫지를 않는다. 이 생활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가운데서 설을 맞이하는 심정이 오죽할까만은 오히려 이들은 덤덤하고 의젓하다. 국민 건강을 위해 우량 품종 씨가축을 지켜내겠다는 공무원 정신을 발휘하는 중이다.

17년째 이곳에서 근무중인 기획조정과 김종근(45) 연구원은 아버지 기일인 지난달 11일에 이어 이번 설에도 술잔을 올리지 못하게 돼 마음이 무겁다. 김씨는 "어머니 혼자 제사 준비하시는게 죄송하지만 가족 모두가 고향에 가지 않기로 했다"며 "구제역을 옮길 수 있는 아주 작은 가능성도 차단하는게 먼저"라고 말했다.

고향에서 부모 형제를 만날 수는 없지만 명절날 조상님께 인사를 건너뛸 수는 없는 법. 이들은 설날 아침 합동제사를 지낼 예정이다. 연구원들과 함께 동거동락하는 식당 직원들을 필두로 다같이 전을 부치고 국을 끓여 차린 제사상에 130여명이 함께 절을 올리고 떡국을 나눠 먹는다. 장영내 홍보팀장은 "소독약 냄새에 지친 직원들이 오랜만에 고소한 기름 냄새 맡으며 휴식을 취하고 고향 못가는 마음을 달랠 수 있길 바란다"며 위로했다. 그러나 설 연휴에도 소독 작업과 상황실 근무는 계속된다. 손동수(58) 수의연구관은 "씨종자가 감염돼 살처분하게 되면 10년 이상 연구해 얻은 유전자원이 물거품이 된다"며 "연휴에도 24시간 감시와 소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전국에 방역초소가 설치돼 소독작업으로 불편을 겪는 귀성객이 많겠지만 협조해 줄 것을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