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제역이 발생한 충남 태안군 고남면 누동1리 돼지농장 인근에서 20일 구제역에 감염됐거나 감염이 우려되는 돼지에 대한 매몰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구제역 살처분 가축 350만 마리가 묻혀있는 전국 매몰지 4천429곳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 대책은 난맥상을 보이고 있다.

   2차 피해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에 대한 논란 속에 최악의 경우 `재앙' 수준에까지 이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지만 정부의 예방 노력은 허술하기만 하다.

   지난해 11월 29일 경북지역에서 구제역이 첫 발생한 이후 3개월이 가까워지면서 구제역 추가 발병은 잠잠해지고 있지만 가축 매몰지가 불러올 수 있는 2차 피해 우려는 커져만 가고 있다.

   환경부는 매몰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수질 오염, 악취, 토지 이용 제한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 `빗물을 막아라'…성패는 하늘에(?) = 강우량이 많아지는 봄철 해빙기를 앞두고 전국의 가축 매몰지에 `빗물 차단' 비상이 걸렸다.

▲ 이만의 환경부장관이 지난 19일 경기도 이천 구제역 가축 매몰지를 둘러본 뒤 침출수 유출 우려 없이 제대로 관리하고 있다고 밝혀 주목을 받고 있는 이천시의 구제역 가축 매몰 방법. 이천시는 돼지의 경우 차수막 매트(위)와 방수가 가능한 녹색천막(가운데)을, 안락사 후 매몰한 소의 경우 비닐막(아래)을 깔아 침출수 유출을 막았다. (사진=연합뉴스)

   겨울철에 부랴부랴 조성된 가축 매몰지에 빗물이 스며들 경우 주변 지역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켜 걷잡을 수 없는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매몰지 조성 초기에는 2차 피해라는 뒤탈보다는 당장 신속한 살처분과 매몰에만 몰두하느라 빗물 유입이나 침출수 유출 방지 등에 대해서는 소홀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19일 방문한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가축 매몰지 두 곳에서도 매몰 가축이 썩으면서 표면이 점점 가라앉아 주변 둑보다 낮아져 비가 오면 그대로 고일 정도였다.

   또 매몰지가 산골짜기 외진 곳에 조성되면서 경사도도 급한 지형인데다 일정한 공간 확보를 위해 산을 깎아내리거나 둑을 새로 만든 경우가 많아 해빙기 붕괴나 빗물 유입 통로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기온이 점점 높아지고 강우량이 많아지기 전에 완벽한 대책을 갖춰야 하겠지만 기상 상황도 그리 녹록한 편은 아니다.

   3월 상순에는 대륙고기압이 약해지면서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기온은 평년보다 높겠고 강수량은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기상청은 예보했다.

▲ 구제역 매몰 가축으로 인해 지하수 오염과 야생동물 전이 등 2차 오염이 우려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 이천시 부발읍의 한 구제역 가축 매몰 농장에서 굴착기가 동원된 복토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이천시는 구제역으로 전체 사육돼지의 98.8%, 36만마리 이상을 매몰 처리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3월까지 매몰지에 대한 정비를 마치고 4월에는 보완작업에 들어간다는 계획이지만 폭우가 그때까지 내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빗물 대책을 채 이행하기 전에 폭우가 쏟아진다면 2차 피해는 `재앙'쪽으로 갈 가능성이 없지 않다.

   ◇ `땜질' 대책에 비용도 점점 늘어 = 가축 매몰지를 조성한 뒤 각 지방자치단체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추가 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비용도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가축 사체가 부패하면서 침출수가 늘고 있지만 매몰 당시 침출수 배출을 고려한 시설(유공관)을 설치한 일부 매물지를 제외한 대부분은 펌프로 퍼내 정화처리하는 등 `땜질' 대책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빗물 유입 방지대책도 마찬가지다. 매몰지 주변 배수로는 어느정도 갖춰놓고 있지만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가리는 시설은 없다. 빗물이 매몰지 표면에 고이거나 흙을 씻어낼 수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경기도 고양시에서는 매몰지 표면에 비닐하우스를 씌우는가 하면 강원도 원주시의 경우는 아예 가건물식 `비가림시설' 설치를 검토하고 있다.

▲ 20일 김문수(오른쪽 아래) 경기지사가 경기도 양평군 강하면의 구제역 가축 매몰지를 방문, 침출수의 산도 측정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침출수가 새나올 경우에 대비해 마을이나 하천 어귀에 아예 집수장을 만들어 하천 오염을 방지해야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봄철 매몰지에서 퍼지는 악취도 심해지고 있다. 매몰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EM(유용미생물)을 미리 가축 사체와 함께 넣었을 경우는 악취를 훨씬 줄일 수 있다는 것이 환경부의 견해지만 지자체는 `사후 약방문'이라는 반응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미리 넣지 않은 매몰지에 EM을 뒤늦게 뿌리기 위해 다시 파낼 수도 없어 고민이다"며 "가스 배출관을 통해 투입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추가 대책은 뒤늦게라도 시행 가능하지만 문제는 비용이다. 지자체는 중앙정부에 국비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 비상 상황인데도 `2인3각' 공조 부실 = 대규모 가축 매몰로 인한 2차 피해 예방이 비상 상황을 맞고 있는데도 관련 부처의 공조는 허점을 보이고 있다.

▲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19일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 구제역관련 가축 매몰지 현장을 방문해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만의 장관은 19일 경기도 이천 매몰지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바람방향까지 거론하면서 구제역 바이러스가 "공기를 통해 전염되는 쪽으로 결론났다"고 언급했으나 사실이 아닌 것을 뒤늦게 확인하고 이를 번복했다.

   농림수산식품부는 그동안 구제역의 공기 전염 가능성에 대한 주장이 있었지만 현재까지는 그런 주장을 입증할 만한 사례나 증거가 뚜렷하지 않아 '공기전염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제역 합동대책 주요 부처 수장이 구제역관련 핵심 사항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는 문제는 물론 관련 부처 간 공조도 그만큼 부실한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까지 낳게 한다.

   경기도 관계자는 "환경부가 지난 17일 발표한 한강 상류 구제역 매몰지의 침출수 우려지역(양평 9곳, 여주 2곳, 남양주 5곳)에 대해 다음날 오후까지도 어느 곳인지조차 통보를 못받았다"며 "정보교환이 안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환경부 공무원들 사이에는 농림수산부가 주도한 가축 살처분과 매몰이 몰고 올 수 있는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업무를 `뒤치다꺼리' 정도로 보는 빗나간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