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대통령 특사단 숙소에 침입한 남녀 3명이 국가정보원 직원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경찰의 수사가 이렇다 할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을 대상으로 사실 관계 확인에 나서기 어려운 측면도 있지만 경찰이 민감한 사안을 조용히 넘기려고 외교통상부나 국가정보원이 사실 관계를 공식 확인할 때까지 '시간 끌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남대문경찰서는 특사단 숙소 침입자들에게 주거 침입, 절도 등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지만 혐의 적용 가능성을 애매모호하게 거론하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경찰은 절도 혐의와 관련, 당초 "돌려줬다 해도 물건을 가지고 객실 밖으로 나간 만큼 절도 혐의가 성립된다"고 했지만 이후 "절도인지 절도 미수인지 단언할 수 없다"며 모호한 입장으로 선회했다.

   용의자를 본 핵심 목격자를 조사하겠다고 밝히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소환 대상과 일정 조차 잡지 못했다.

   참고인이 조사에 응할지는 사건 발생 초기에 파악할 수 있는데도 여전히 "신원이 파악되지 않았다. 의견 조율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밝히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또 "탐문수사 위주로 하고 있다. 소환조사를 한 적은 아직 없지만 당사자가 (이를) 거부하면 이뤄질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건 발생 초기에 "확보한 CCTV를 분석해 범인을 특정하고 검거할 예정"이라고 상당한 의지를 보였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조현오 경찰청장이 국정원 직원들의 행각이라면 처벌을 해도 실익이 없는 것 아니냐고 언급한 것도 수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경찰은 지난 16일 오후 사건 신고를 접수하고 나서 이틀 뒤인 18일 오후 호텔 측에 공문을 보내 CCTV 자료를 요청한 데 이어 지난 21일 뒤늦게 CCTV 자료를 추가 요청했다.

   경찰은 엘리베이터와 복도 등에 설치된 CCTV에 침입자의 모습이 그대로 찍힌 사실을 파악하고도 사건 발생 후 6일이 지나도록 인상착의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요 사건의 경우 CCTV를 통해 확인된 용의자 인상착의를 공개해온 관행과 배치되는 것이다.

   특사단 관계자들이 모두 본국으로 출국한 상태이고 노트북에 든 내용을 전혀 확인하지 못해 괴한들이 USB 장치를 특사단의 노트북 컴퓨터에 꽂았는지, 기밀 정보를 빼내갔는지 등을 파악하기 쉽지 않은 애로도 있다.

   게다가 인도네시아와의 외교적인 문제가 있어 더 신중하고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상급 관청과 검찰 등의 수사 지시ㆍ지휘도 받아야 하는 등 수사 외적인 요소도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뒷북 수사' 의혹을 받는 경찰이 전국민적 관심 사건에 대해 계속해서 '시간 끌기' 모양새를 이어간다면 경찰의 신뢰도에 상처를 낼 것이라는 지적도 많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