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대책으로 정부가 내놓은 야간조명 제한 조치가 본격 시행된 7일 밤과 8일 새벽 서울 번화가와 유흥가에서 현란한 불빛이 사라졌다.
대다수 건물과 업소들이 적극적으로 소등에 참여했지만 일부 업주들은 마지못해 따르면서도 "장사는 어떡하느냐"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자정이 지난 여의도 증권가. 편의점이나 카페에만 드문드문 불이 켜졌을 뿐 금융사들의 간판은 은행 지점 한 곳을 제외하고는 모두 소등 상태였다. 금융업종은 자정 이후 조명을 끄도록 했기 때문이다. 일부 영업점은 초저녁부터 일찌감치 불을 꺼놓기도 했다.
서초동과 반포동 일대 자동차 전시장도 담당 구청의 야간조명 단속에 앞서 간판과 내부 조명의 스위치가 모두 내려져 있었다.
이들 매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홍보를 위해 밤새 내부 조명등을 환하게 켜놓았던 곳이다.
주유소들도 야간에 조명을 50%만 사용하도록 한 지침을 지켰다. 서초동의 한 주유소는 대형 표지판 조명을 껐고, 강남대로의 한 주유소는 모든 조명을 소등한 채 주변 음식점 불빛에 의지하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의 경관 조명도 예외 없이 소등됐다. 용산구 일대 주상복합건물과 아파트는 평소 벽면과 옥상에 간판과 경관조명이 환하게 들어왔지만 이날은 단 한 군데도 불을 켠 곳이 없었다.
정부는 지난달 27일 에너지 위기경보를 '주의'로 격상하고 이에 상응하는 에너지 절약 정책 시행에 들어갔다.
대형마트 등 대규모 점포는 영업시간 외에 조명을 꺼야 하며 단란주점, 유흥업소는 오전 2시 이후 옥외 야간조명을 제한했다.
이날 건물과 점포들이 정부의 정책에 잘 따라준 것은 담당 공무원들의 사전 계도와 홍보활동의 힘이 컸다.
용산구 관계자는 "오늘만 세 번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조명 제한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공문을 띄우고 다음은 전화하고 마지막으로 직원이 직접 찾아가 연락 내용을 잘 아는지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자치구 담당 직원들은 며칠 동안 자신의 점포가 야간조명 단속대상에 포함되는지를 묻는 시민 전화에 시달리기도 했다.
강제 시행에다 대대적인 단속까지 이뤄지다 보니 마지못해 따르면서도 불만을 터트리는 업주도 많았다.
중구 북창동 유흥가 거리는 새벽 2시가 되자 일사불란하게 전광판이 소등되기 시작했다. 제한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노래방과 당구장, 숙박업소도 모두 불을 껐다.
유흥업소 종업원 김성훈(34)씨는 "안 그래도 북창동이 예전 같지 않아 힘든데 오늘은 손님이 절반 이하로 준 것 같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북창동에는 이날 새벽 중구청 직원 120여명이 출동해 지도·단속을 펼쳤다.
영등포역 일대와 강남의 유흥가도 새벽 2시 이후 불이 켜있는 업소가 전혀 눈에 띠지 않았다.
영등포역 앞 노래바 사장 김용호(42)씨는 "에너지를 절약하자는 정부 의도는 이해하지만 유흥주점만 간판 불을 끄라고 하는 건 불공평하다. 게다가 우리는 전기 소모도 많지 않은 형광등을 쓴다. 전시행정의 전형 같다"고 혹평했다.
강남 유흥주점 사장 민윤서(37.여)씨는 "새벽 3시면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고 사람들이 몰려오는 시간"이라며 "2시에 간판불을 꺼야 하면 3시 장사는 아예 접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푸념했다.
현장 단속에 동행한 도경환 지식경제부 에너지절약추진단장은 "에너지 절약에 대한 대국민 분위기 조성이 가능해진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규제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정부는 1주일간 계도 기간을 거쳐 7일부터 민간 조명 제한조치를 시행했으며 규정된 시각을 넘어 간판을 켜 두면 위반 횟수에 따라 최고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