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지분 7.75%를 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의중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하면서 '덤'으로 딸려온 현대상선 지분이 향후 언제든 촉발될지 모를 현대상선 경영권 분쟁에 핵심 열쇠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시험대에선 중립을 지켰다. 현대건설은 지난 25일 현대상선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았고 대리인 위임도 하지 않았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의 경영권 안정을 위해 시도한 우선주 발행한도 확대 정관변경안은 이날 현대중공업그룹을 위시한 범현대가 기업들의 봉쇄로 부결됐다.
표결에 현대건설이 참석하지 않았지만 KCC, 현대산업개발, 현대백화점이 모두 힘을 합해 35%가 넘는 의결권으로 안건을 저지했다.
일각에서는 현대건설이 참여하지 않아도 이미 부결이 충분히 예상됐기 때문에 굳이 현대중공업 편을 들 필요가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의도야 어찌 됐든 이번 주총을 통해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 7.75%는 언제든 분쟁의 향방에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이쯤 되면 현대건설의 현대상선 지분이야말로 정 회장에게는 '꽃놀이패'나 다름없다.
현대그룹에는 '생사여탈'을 가를 중대 변수지만, 현대차그룹은 이 지분을 큰 부담없이 경영권 분쟁의 캐스팅보트로 쥐고 다양한 방법으로 그룹의 이득을 꾀할 수 있다.
정 회장이 최근 기자들에게 현대상선 지분과 관련해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그룹에 넘기는 데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이해가 간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의 상선 지분을 이용해 어떤 이익을 꾀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억측이 분분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정 회장은 우선 현대상선 지분을 이용해 분쟁을 조정하거나 어느 한쪽 편을 들어줘 범현대가의 맏형으로서 상황을 장악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총을 앞두고도 경영권에 위협을 느낀 현대그룹은 속이 타들어갔지만, 현대차그룹은 현대가 그룹 간에 벌어지는 다툼을 가만히 앉아서 입맛에 맞게 조정할 수 있었다.
향후 현대그룹이 현대상선 경영권을 어떤 방식으로든 강화하려는 과정에서 현대차그룹은 현대그룹이 소유한 현대증권이나 현대로지엠(구 현대택배) 등과 상선 지분을 맞바꿀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대증권은 현대차그룹의 HMC투자증권과, 현대로지엠은 글로비스와 합병할 경우 경영권 승계에 유리한 구도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현대그룹은 현대차그룹과의 진정한 화해는 현대상선 지분을 넘길 때만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결국 상황에 따라 현대차그룹은 지분을 넘기고 필요한 것을 얻어 동생이 이끌었던 현대그룹과의 '화해'라는 명분과 실리를 모두 챙길 수도 있다.
재계와 증권가에서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 간의 다툼에는 뒤에 숨은 현대차그룹의 속내를 지켜봐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