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올해 들어 학생 4명이 잇따라 자살한 데 이어 교수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10일 오후 4시께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 한 아파트에서 KAIST 박모(54) 교수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박 교수의 아내는 "남편이 오늘 서울 집으로 오는 날인데 연락이 안 돼 내려와 보니 아파트 안에서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 당시 박 교수는 주방 가스배관에 붕대로 목을 맨 상태였으며 외부 침입 흔적은 없었다.
박 교수는 최근 교육과학기술부의 종합감사 결과에 연구인건비 등 문제가 포함됐다는 것을 전해듣고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가 숨진 현장에는 "애들을 잘 부탁한다. 미안하고 사랑한다"는 내용의 A4용지 3장짜리 유서가 발견됐다.
박 교수는 지난 1996년 KAIST에 부임해 2007년 영년직 심사를 통과했고 생명과학 분야에서 저명한 학자로 알려져 지난해 2월에는 연구성과를 인정받아 최우수교수로 선정됐으며 지난 1월에는 '올해의 KAIST인상'에 뽑히기도 했다.
한 동료 교수는 "박 교수가 지난 8일 종합감사 결과 검찰고발 방침 등 조치내용을 통보받고 나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에는 최근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KAIST 학생들에 대한언급은 없어 학생 자살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유족들을 상대로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에 이어 교수까지 잇따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KAIST는충격에 휩싸였으며 시신이 안치된 병원에 모여있는 동료 교수와 학생들도 말문을 잃은 모습이었다.
박 교수의 비보가 전해지자 서남표 KAIST 총장과 주요 보직교수들은 급히 학교로 나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한 보직교수는 "왜 자꾸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겠다"며 "이제는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됐는지조차 잘 모르겠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온 서남표 총장은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병원을 찾아 문상했으며 별다른 일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영안실 앞에는 동료 교수와 학생 30여명이 2-3명씩 모여 굳은 표정으로 "도대체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면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유가족들이 심리적으로 너무 불안해하고 있어 안정이 필요하다"면서 취재진의 접근을 막았다.
박 교수가 숨진 아파트 앞에서도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자살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목격됐다.
이날 KAIST 학생 20여명은 KAIST 본부 앞에서 촛불을 든 채 추모집회를 열고 고인을 애도했다.
한편 KAIST에서는 지난 1월 전문계고 출신 '로봇영재' 조모(19)군을 시작으로 지난 7일 과학영재학교 출신의 휴학생인 박모(19)군까지 올해 들어 학생 4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