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인수 (지역사회부장)
[경인일보=]공공과 민간분야 구분 없이 어떤 조직이건 조직의 뿌리를 갉아먹는 사이비들이 섞여 있기 마련이다.

사이비가 완벽하게 제거된 조직은 있지도, 가능하지도 않다. 인간의 원죄는 선악을 초월해 영원해서다. 사이비 경찰, 사이비 종교인, 사이비 법조인, 사이비 정치인, 사이비 공무원…. 민간분야라고 다르지 않다. 약자인 을(乙)을 어르고 달래고 쥐어짜 제 뱃속을 불리는 사이비 갑(甲)들이 세상에 널렸다. 언론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사이비는 모든 분야에서 예외 없이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잠복해 있다. 그래도 사이비 세상이 안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조직마다 사이비를 사전에 거르고 도중에 솎아내는 기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언론은 매일매일 각종 독직, 비리, 범죄를 보도해 세상을 각성시킨다.

사이비들이 아무리 불가항력적인 존재라 하더라도 웬만해선 초장부터 사이비들의 진입을 철저히 경계해야 하는 분야가 있다. 정치가 그러한 분야이다. 나라를 경영하는 일이 정치의 소임이다. 헌법에 의해 권력을 획득한 선량과 정당들이 국가를 경영할 법을 만들고, 그 법에 따라 국가를 경영하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자랑스럽게 옷깃에 매단 금배지는 국가경영을 위임받은 권력의 상징이다. 금배지의 무게는 6g에 불과하지만 국회의원이 행사하는 권력의 무게는 측정이 불가능한 것도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아 정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배지의 상징에 상응하는 국회의원이 몇명이나 되는지는 의문이다. 그들의 독선과 비타협, 폭력적인 언행 등 닳고 닳은 비난거리를 되새김질하자는게 아니다. 동남권 신공항 문제만 놓고보자. 대부분이 여당인 한나라당 경상도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과연 국정을 논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묻고 싶을 정도다. 대통령이 공약을 되물린 것은 사실이다. 화도 날 것이다. 그래서 대통령을 향해 '서울 TK'라고 비아냥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엉뚱한데 화풀이를 한데 있다. 수도권에 대기업의 첨단업종 공장 증설이 가능토록 한 '산업 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에 관한 법률(산집법)시행규칙 개정안' 처리를 보이콧하고 나선 것이다. 내 쪽박 깨졌으니, 네 쪽박도 깨자는 심보다. 도대체 동남권 신공항과 산집법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동남권 신공항. 아무리 계산해봐도 경제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오죽하면 TK 출신인 대통령이 자신의 공약을 물렸겠는가. 여당 의원들이 언제부터 대통령을 핫바지로 여겼는지는 모르겠으되, 그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이래야 다음 총선에서 당선될 수 있다는 속셈의 결과일 것이다. 물 건너간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지역 유권자들의 역정을 피하려 산집법을 빌미로 수도권을 면피용 제물로 선택한 것이다. 그들은 지역을 위해 어떤 싸움도 벌일 수 있고, 대통령도 무섭지 않은 투사들이다. 그렇다. 그들은 진정한 지역의 대변자들이다. 지역의 투사들은 지금 과학벨트의 분산배치설을 주장하고 구미 출신의 두 의원은 평택으로 생산공장을 이전하려는 LG전자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려고 국회에서 고성을 지르고 있다.

지역의 투사들은 국정에 복무하라는 헌법의 정신과 국민의 명령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을 뽑아 준, 또 선택해 줄 십만명 안팎의 지역 유권자에게만 헌신하고 봉사한다. 영역을 넓혀봐야 도(道)의 경계를 넘지 못한다. 국정을 논해야 할 국회의원 대다수가 이렇듯 지역 유권자의 표에 복무하는 정치로 과연 대한민국이 전진할 수 있겠는가.

국회의원 금배지는 무늬만 금배지다. 순은에 도금을 했다. 사이비 금배지인 셈이다. 지금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은 딱 그들이 매단 사이비 금배지 만큼이나 가볍고 왜소하고 경박하다.

정략에 찌든 정치인이 아니라 국정을 논하고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안녕을 고뇌하는 정치가가 그립다. 정치꾼(politician)이 아닌 정치가(statesman)들이 국회를 채우는 날 국민들은 주저 없이 순금 배지를 달아줄텐데, 그 날이 요원하니 큰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