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겨울 경기도는 물론 전국을 초토화시킨 구제역에서 자신의 한우들을 지켜낸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 가나안 농장의 임종선(48)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한우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1일 새벽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 가나안 농장에서는 작은 경사가 있었다.

   전국을 휩쓴 구제역 사태 속에 송아지 한 마리가 태어난 것이다.

   이날 오전 농장을 방문했을 때 갓 태어난 송아지는 아직 태반이 나오지 않은 어미 소의 젖꼭지를 물고 열심히 우유를 빨고 있었다.

   농장주 마흔여덟 동갑내기 임종선.김복연씨 부부는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이런 광경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어느 농장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구제역으로 축사가 초토화돼 텅 비어 있는 요즘, 새 생명의 탄생이 새롭게 다가왔다.

   소 215농가 6천345마리, 돼지 11농가 1천550마리를 사육 중인 광주에서는 한 농가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

   광주 농가들은 어떻게 구제역을 막아냈을까.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첫 구제역 발생이 확인됐을 때만 해도 임씨는 '차단방역만 잘하면 되겠지'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보름 만에 구제역이 경기 남부를 건너뛰어 경기 북부까지 확산되자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한우협회광주지부 회장을 맡고 있는 임씨는 전화통을 끼고 농가에 차단방역을 독려했지만, 날로 확산되는 구제역 기세에 한 치 앞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던 임씨는 지난해 12월 중순 조억동 광주시장에게 '결단'을 건의했다.

   지난해부터 광주시농업기술센터 정대이 농촌지도사가 개발해 보급한 구연산·유산균 복합제(구제역 제로)를 계속 보급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복합제 효능이 과학적으로 100% 검증이 안 된 상태였고 구제역 전파를 우려해 각 시군의 현장지도가 중지된 상태였다.

   복합제 보급은 전염 가능성을 최소화하고자 공무원들이 10ℓ들이 용기를 마을회관에 두고 가면 '007작전'하듯 농가에서 가져오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 지난 겨울 경기도는 물론 전국을 초토화시킨 구제역에서 자신의 한우들을 지켜낸 경기도 광주시 도척면 유정리 가나안 농장의 임종선(48)씨가 흐뭇한 표정으로 한우들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임씨는 "복합제가 pH(수소이온농도) 4 이하여서 pH 6 이하에서 사멸하는 구제역 바이러스를 죽이고 면역력도 높인다는 농업기술센터의 설명을 믿고 소가 먹은 사료는 물론 물, 소, 축사에도 뿌렸다"고 말했다.

   "그것뿐이었느냐?"라고 묻자 그는 "혼합사료(TMR)에 유산균·효모균·고초균 세 가지를 혼합해 발효시킨 섬유질배합사료(TMF)를 2008년 8월부터 영농조합이 자체 운영하는 사료공장에서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고 했다.

   모든 농가가 그랬듯이 임씨 부부도 두 달 넘게 외부 출입을 끊고 감옥생활을 했다. 차단방역이 뚫리면 백약이 허사이기 때문이다.

   임씨 농장 입구는 이동용 화장실 형태의 '출입자소독실'이 있다. 그것도 부족해 60만원을 주고 가정용 오존·자외선 소독기까지 샀다. 대학에 다니는 두 딸은 방학 중에도 기숙사에 머물렀다.

   "하루는 집배원이 대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버럭 호통을 친 일이 있는데 이제 와 생각하니 미안하다"며 웃음을 지었다.

   도로 곳곳에 방역초소가 설치됐지만, 주택과 한울타리 안에 있는 그의 농장은 마을버스와 차량이 수시로 지나가는 길목이다.

   구제역이 창궐한 이천시 경계와는 불과 2㎞ 거리에 있고 용인시와도 가깝다.

   임씨는 지금 소 117마리에 논 4만㎡와 사료밭 1만㎡를 경작하고 농림부장관과 경기도지사 표창까지 받은 '성공한 농업인'이 됐지만, 처음부터 세상은 녹록지 않았다.

   빈농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인삼농장에서 일하다 중학교를 한 해 늦게 졸업했다.

   남들이 대학을 다닐 때 부모 농사일을 돕던 그는 스무 살에 경운기를 구입하고 스물다섯에 소 한 마리로 축산을 시작해 우루과이 라운드와 외환 위기를 극복하고 지금의 농장을 일궜다.

   임씨는 "축사 한 칸만 비워도 허전한데 자식 같은 소를 한꺼번에 매몰한다면 누구나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라며 "위기를 잘 극복한 사람에 기회가 있듯이 참담한 피해를 당한 농가들도 반드시 재기할 것"이라고 했다.

   축산 후진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자 "팔당호 수질보전대책1권역이다. 소와 한울타리에 살고 있고 이웃들도 민원 한 번 제기한 적 없다. 축분은 논밭의 유기질 비료로 사용하고 그 논밭에서 나온 벼와 작물을 사료로 사용하고 있다. 축사엔 여름철 파리 구경하기 어렵다. 혹시 냄새(악취) 나느냐?"라고 반문했다.

   그는 "모든 농가가 이 정도의 방역을 했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국가 전체의 방역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검토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돌아서는 기자에게 "축산물 안정성에 대한 신뢰도 하락과 소비 감소, 곡물가 상승과 소값 하락 등으로 축산농의 고통이 크다. 하루빨리 (축산업에 대한) 신뢰가 회복됐으면 한다"는 말을 꼭 써달라고 주문했다.

   이천·용인·양평·여주 등 인접 지자체 모두 구제역에 뚫린 가운데 차단방역에 성공한 광주시는 오는 5월 4일 경안천변 청석공원에서 '청정지역 지킴이 선포식'을 가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