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모처럼 여·야가 국회 본회의장에서 합의하는 모습을 보려던 기대가 또 깨졌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이 민주당의 보이콧으로 사실상 한나라당 단독 형식으로 통과됐다. 국민들은 국가적 망신인 '국회 몸싸움'이 벌어지지 않은 것을 그나마 다행으로 삼아야 했다. 여야는 지난 2일 한·EU 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키로 하고 4일 '원 포인트 국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협상직후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는 "정부 입장에선 많이 양보한 것이지만 국회의 합의처리는 큰 소득"이라고 했고, 민주당 전병헌 정책위의장도 "정부·여당이 수용하기 어려울 정도의 피해보전대책을 이끌어 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요구한 농업분야 지원 및 소상공인 보호대책을 대부분 수용했다. 민주당도 소상공인 보호를 위한 FTA개정 협상을 협정발효 이후에 하자는 한나라당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여·야의 이같은 합의는 4·27 재보선에서 국민의 무서운 민심을 읽고, 양측이 조금씩 양보하면서 어렵사리 타협한 것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일부에서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의견을 달리하는 두 부류가 합의하기 위해선 대화와 양보가 필요하다. 그래서 타협은 최상이 아닌 차선을 택하게 돼 있다.

민주당의 이날 보이콧은 비준안처리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의원들의 농성과 일부 강성 의원들의 반대로 동요되기 시작했다. '최고위원들의 뜻과 다르다', '모처럼 조성된 야권공조가 깨질수 있다'는 게 이유다. 이런 논리라면 애당초 여야 협상의 자리에 민주당 최고위원이나, 원내교섭단체도 아닌 민주노동당 의원을 합석시켰어야 했다. 아니면 민주당 대표가 다른 야당의 위임이라도 받던가. 동남권신공항·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국익 차원의 사안도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며 머리에 띠를 두르고 난리를 쳤던 의원들이 정작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원내대표라는 기구간의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엎어 버리는 것은 이율배반의 극치다.

이번 사태로 4·27 재보궐선거 이후 야권통합에 목말라하는 민주당이 소신없이 민주노동당과 다른 야권의 눈치만 살피고 있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특히 4·27 재보선의 승리와 한·EU FTA합의로 지지율이 한껏 상승모드였던 민주당으로서는 명분과 실리 모두를 놓치며 비난만 안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