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6일 현충일 추념사는 이례적으로 한국전 당시 전사했으나 지난해에야 유해를 찾은 고(故) 이천우 이등중사의 이야기로 시작됐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 이등중사의 유해 발굴 과정과 배경을 직접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통령은 "18세 청도 청년 고 이천우 이등중사는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 쓰스로 뛰어들었다. 홀어머니의 눈물을 뒤로 한 채 형 고 이만우 하사가 입대한 지 불과 한 달 만이었다"며 "아우는 장렬한 죽음마저 형의 뒤를 따랐지만 60여년 찬 서리 비바람 속에서 홀로 남겨져야 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어머니는 두 아들을 가슴에 고이 묻고 1985년 세상을 달리했으나 정부는 시신마저 찾지 못해 애태우던 어머니의 눈물을 잊지 않았다"면서 "마침내 6.25 전사자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지난해 강원도 백석산 능선에서 고 이천우 이등중사의 시신을 찾았다"고 말했다.
추념사에 앞서 이 대통령은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함께 현충원에서 열린 이 이등중사의 안장식에 참석, 유족 대표와 함께 직접 허토를 하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나란히 묻히게 된 두 형제의 묘비를 흰 장갑을 낀 손으로 쓰다듬으며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이 장면을 다시 떠올리면서 "조금 전 아우는 형 곁에서 편안한 잠을 청했다. 죽음과 세월도 사랑하는 홀어머니를 뒤로 한 채 정든 고향집을 떠났던 두 형제의 애틋한 우애를 갈라놓지 못했다"며 이들 형제를 '호국의 형제'로 명명했다.
또 한국전에서 전사한 유엔군 용사들을 함께 거론하면서 "대한민국의 오늘은 그냥 얻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이 고귀한 생명을 바쳤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슬픔의 세월을 견뎌야 했다"면서 "그 희생 위에 우리는 이 땅에 다시 나라를 세우고 험한 가시밭길을 헤치며 조국의 앞날을 개척해왔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추념식이 끝난 뒤 현충원 내에 있는 `국방부 유해발굴 감식단'을 직접 찾아 박신한 감식단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 대통령은 유해 미발굴자 13만여명 가운데 4만 여명의 유해가 비무장지대와 북한 지역에 있다는 박 단장의 설명을 듣고 "그 분들은 통일이 돼야 찾을 수 있겠네"라면서 "유엔군은 싸운 자리가 따로 있을테니 거기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최후의 한 사람까지 끝까지 찾아야 한다"면서 "남북통일이 되면 북에서도 찾고, 최후의 한 구까지 끝까지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