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0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격차 줄이기'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경제가 지표상으로는 견실한 성장이 이어지고 있지만, 서민의 체감경기는 나아지지 못하고 있다는 상황인식에서 비롯한다.

   따라서 정부는 지표-체감경기 격차와 수출-내수 격차, 소득 격차 등을 줄이고자 물가와 고용, 내수, 사회안전망 등 서민생활 분야에 정책 역량을 집결하기로 했다.

   또한 정부는 성장률 전망을 올해 4.5%, 내년 4% 후반으로 제시해 5%에서 내렸으나 거시정책은 성장에 집착하지 않고 물가안정에 우선순위를 둬 긴축재정을 견지하기로 했다.

   이번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또 다른 특징은 과거와 비교하면 새로운 방향을 많이 담았다는 것이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 이후 첫선을 보인 이번 정책방향은 내년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안정에 우선, 지표-체감 격차 줄인다
그동안 거시지표의 성과를 부각시켰던 정부의 경제평가는 박재완 장관 취임 이후 체감경기의 부진에 부쩍 무게가 실렸다.

   정부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현재 경제상황에 대해 높은 수준의 물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소득증가가 완만해 서민의 체감경기 개선이 미흡하다고 진단했다.

   특히 달러화 약세와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교역조건이 악화됨에 따라 실질구매력이 감소한 것을 우려했다. 국내총생산보다 국민총소득이 감소하면서 가계의 실질소득이 둔화되는 것에 주목한 것이다.

   정부는 올해 교역조건은 5% 내외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으며 최근 교역조건 악화가 수입가격 상승에 기인하는 만큼 내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날 것으로 우려했다.

   정부가 물가 전망치를 반년 만에 '3% 수준'에서 4.0%로 대폭 올려잡은 것은 물가상황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굉장히 심각하다는 뜻과 함께 물가안정을 위한 정책적 노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하반기에도 경제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물가안정에 두면서 거시정책은 확고한 물가안정 기반 위에 고용과 경기회복이 지속될 수 있도록 총수요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또 다소 긴축적인 재정기조를 견지하고 시중 유동성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며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운영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아울러 정부는 취업자 수가 올해 들어 5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만명 늘었으나 일자리 수가 위기 전 추세수준에 미달해 청년층 등의 고용 애로는 지속되고 자영업 등 취약부문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인식에 따라 일자리 대책은 특성화고ㆍ마이스터고 졸업생과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중소기업 등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에 중점을 뒀다.

  
◇내수ㆍ사회안전망 강화로 부문 간 격차 해소
우리 경제의 수출 편중 현상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심해진 가운데 최근에는 교역조건 악화로 내수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자 정부는 내수활성화 대책을 서둘렀다.

   이명박 대통령이 내수 대책을 지시한 지 한 달 만에 국정 토론회와 태스크포스 가동을 통해 내수 활성화 108개 과제를 추렸으며 이 가운데 30개 과제를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담아냈다.

   각 부처 장차관들이 머리를 맞대 발표한 내수 대책에 대해 참신한 것이 없고 효과도 의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됐지만, 물가가 높은 상황에서 섣불리 경기부양에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정부도 내수회복이 지연될 것이라는 인식을 함께하는 만큼 내수 활성화를 위한 좀 더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레저를 포함한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 소비를 진작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내수 대책보다 전날 삼성그룹이 임직원 20만명이 1천억원 상당을 여름휴가와 추석에 소비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는 발표가 더 효과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삼성의 내수진작 발표는 박재완 장관이 줄곧 강조한 '높은 길'(high road)에 입각한 자율적 동참의 대표적 사례"라며 "앞으로 다른 기업들의 참여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비중 있게 다룬 사회안전망 강화는 소득격차를 해결하는 동시에 정치권의 복지 포퓰리즘에 대응하려는 포석으로도 볼 수 있다.

   정부 복지정책의 기본방향은 무상 급식이나 반값 등록금보다 아직은 기초수급자나 저소득층의 사회보장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소득분배지표가 정부의 공적부조 등에 따라 개선됐다고 강조했던 정부가 이번 경제정책방향에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와 비교할 때 공공부문의 소득분배 개선 효과는 아직 낮은 수준이라고 밝혔다.

   특히 소득분배 개선추세가 지속될 지 여부는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대-중소기업, 정규직-비정규직 등 부문 간 격차가 지속해 소득분배가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따라서 정부는 보호가 필요한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되 일하는 것이 유리하도록 사회안전망을 설계한 정책방향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