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상장사의 사외이사후보추천위(사추위)에 재벌총수, 사장 등 최고경영자(CEO)들이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사추위가 회사 측에 의해 완전히 장악돼 외부 인사에 의한 경영 감시가 원천적으로 부실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지방국세청장, 검사장·법원장, 장ㆍ차관 등 권력자들이 공직 은퇴 후 상장사 감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사례가 많아 기업 감사라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바람막이 역할을 기대하고 사측이 이들을 선임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감사위원회는 기업의 경영 투명성과 국제경쟁력 제고를 위해 1999년 도입됐으며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차원에서 감사함으로써 주주와 채권자 등 기업의 이해관계인을 보호하는 게 핵심 임무다.

   16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을 보면 시가총액 30개사(금융사 제외) 가운데 회장ㆍ부회장ㆍ사장 등 CEO급이 사추위 위원장 또는 위원으로 참여한 곳이 20개사다. 이는 전체의 66.7%로 3곳 중 2곳에 해당한다.

   모두 4명(사내이사 2명, 사외이사 2명)으로 이뤄진 현대자동차 사추위에는 정몽구 회장과 양승석 사장이 직접 참여한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최종태 POSCO 사장,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도 각각 자사의 사추위에 들어가 있다. 최태원 SK회장은 SK이노베이션 사추위 위원이다.

   사추위 심의를 거쳐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선임된 사람 일부는 감사위원으로 일하게 된다.

   대형 상장사의 감사위는 전원 사외이사로 채워진다. 이들의 상당수가 국세청, 검찰, 법원, 감사원, 청와대, 기획재정부 등의 정부 고위직 출신이다.

   30대 상장사 사외이사들 가운데 지방국세청장 출신은 7명에 이른다. 기아차는 대구지방국세청장, 삼성중공업은 중부지장국세청장 출신을 각각 감사위원으로 영입했다.

   현대차ㆍ현대모비스ㆍ삼성물산ㆍ현대제철ㆍ현대건설 등도 지방국세청장 출신을 감사위원으로 선임했다.

   지방 법원장과 검사장 출신 감사위원을 둔 곳은 현대차ㆍ포스코ㆍ현대모비스ㆍLG전자ㆍ현대건설 등 5개사다.

   장ㆍ차관급 출신이 감사위원인 곳도 있다. LG화학은 전 법제처장, LG는 전 노동부장관을 각각 감사위원으로 두고 있다. 고려아연은 공정위 부위원장 출신과 복지부 차관 출신을 감사위에 배치했다.

   감사원 감사위원, 부장 판사, 청와대 비서관, 세관장, 대검 형사부장, 남대문 세무서장, 국세청 조사국장, 경찰청 정보국장 등으로 일하다 감사위원이 되기도 했다. 나머지는 대부분 전ㆍ현직 교수들이다.

   대기업 감사위원회가 유력 공직자 출신들을 싹쓸이해가는 블랙홀이 된 것이다.

   대기업이 권력기관 출신을 사외이사로 유달리 선호하는 것은 전관예우 관행이 심한 우리나라 공직사회 풍토를 고려한 것으로 분석된다. 회사 비리 등이 불거졌을 때 이들이 외풍 막이 역할을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 선임한다는 얘기다.

   기업들의 방만ㆍ독단 경영과 부패 등을 막지 못해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했다는 반성에서 탄생한 사외이사ㆍ감사위원이 생선가게 고양이 신세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채이배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연구원은 "이사회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조직이지만 한국의 사외이사는 지배주주나 경영진과 학맥, 인맥 등으로 연결되다 보니 감시와 견제를 못 한다. 이런 사람들로 감사위원회가 구성된 탓에 감사가 부실해지기 쉽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