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간 지켜온 메모리 반도체 기술 일등국가의 위상을 다시 일본에 내줄 것이냐, 아니면 격차를 더욱 벌려 승자독식 체제를 굳힐 것이냐.

   세계 1, 2위 D램 반도체 생산업체인 삼성전자, 하이닉스반도체와 3위인 일본 엘피다가 가장 앞선 미세공정 기술인 20나노미터(㎚,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급 제품 양산을 놓고 국가 간 자존심이 걸린 싸움에 돌입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엘피다가 지난 5월 25나노 D램을 7월부터 샘플 출하와 동시에 양산하겠다고 밝히자 일본 언론은 19년 전 한국에 빼앗겼던 메모리 반도체 기술력의 우위를 되찾을 것이라며 대서특필했고,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일제히 "두고 보자"며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었다.

   엘피다는 이후 7월 말까지 조용한 행보를 보이다 이달 초 홈페이지에 올린 보도자료를 통해 "25나노 2기가비트(Gb) 용량의 DDR3 SD램 샘플(시제품)을 7월 말 업계 최초로 출하하고 상업 생산 공정에 적용하기 시작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20나노급은 30나노급보다 전력 소모가 15~20% 적으며 회로 선폭(간격)이 좁아지고 크기도 작아져 반도체 재료인 웨이퍼에서 더 많은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생산성 및 경제성 측면에서 경쟁업체를 가격 경쟁력으로 따돌릴 수 있다.

   엘피다는 새 제품이 PC뿐 아니라 다양한 서버와 스마트폰, 태블릿PC, 노트북, 평판TV, 셋톱박스 등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4기가비트 DDR3 SD램은 연말까지 생산하겠다고 덧붙였다.

   엘피다는 또 8일 일본 회계연도 기준으로 1분기(4~6월) 실적을 발표하면서 회사설명회(IR) 자료를 통해 "7월 말 25나노 제품의 샘플 출하를 시작했으며 25나노를 포함한 30나노급 이하 제품 비중을 6월 말 현재 10% 수준에서 9월 30%, 12월 55% 안팎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국내 업계는 여전히 엘피다의 제품 개발 단계를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엘피다는 지난 5월 25나노 제품의 샘플 출하와 양산(volume production)을 7월부터 한다고 했지만, 현재 이 회사가 밝힌 공식 단계는 '샘플 출하'라는 것이다.

   새 D램 칩과 모듈을 개발해 인증을 받고 PC 제조업체 등에 보내 세트 장착을 결정하기까지 적어도 수개월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일단 '양산'한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한 업계 관계자는 설명했다.

   또 1분기(4~6월, 일본 회계연도 기준)까지 3분기 연속 막대한 영업적자를 낸 엘피다가 국내외에서 투자 자금을 모으려 기술 개발 단계를 과장하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도 국내 업계는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기술력에서 뒤처지지 않고 시장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30나노급 제품의 비중을 높이는 동시에 20나노급 미세공정 개발 및 제품 양산 시점을 최대한 앞당긴다는 방침이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연말까지' 20나노급 제품을 양산하겠다고 밝혀왔으나 이를 '연내 가급적 빨리'로 전략 수정했으며 30나노급 제품의 비중도 연말까지 50%로 높이기로 했다.

   권오철 하이닉스 사장도 최근 IR에서 "4분기 20나노 후반급 개발을 완료해 선두 업체와 격차가 거의 없어지는 수준으로 가고, 20나노 초반급 D램은 내년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1980년대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던 일본과 1992년 세계 최초로 삼성전자가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신기술 개발과 시장점유율에서 19년간 일본을 따돌려온 한국이 20나노급 D램 시장에서 정면으로 맞붙은 형국이어서 최후의 승자가 어느 쪽이 될지 세계 반도체 및 IT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D램 = PC 등에 일반적으로 쓰이는 메모리 반도체의 일종. 내부 회로의 선폭을 줄이면 생산 효율이 높아져 업체마다 기술 경쟁이 치열하다. 현재 30나노~40나노급 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