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29일 수원디지털시티에서 열리는 '2011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를 참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삼성전자[005930] 회장이 16일 오전 10시께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 출근했다.

   지난 4월11일 정례 출근을 시작한 이후 늦어도 오전 8시30분을 크게 넘기지 않았던 관례와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늦은 출근길이다.

   이 회장은 이날 통신을 포함한 삼성전자 세트부문 사장단과 현안 점검 회의를 주재할 것으로 전해졌다.

   구글의 모토로라 모빌리티 인수가 전격 별표된 직후인데다 갤럭시탭 판매금지 문제 등이 논란이 되는 만큼 관련 문제가 집중 논의되고, 이 회장이 직접 지시사항을 전달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된다.

   이 회장은 지난주엔 전자 및 금융계열사 사장단으로부터 급격한 불황에 빠져들고 있는 반도체 시장 상황과 글로벌 경제위기와 관련한 동향을 보고받았다.

   한창인 나이 때에도 좀처럼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사저에서 대부분의 업무를 처리했던 이 회장의 발걸음이 빨라진 것은 그만큼 그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게다가 이제까지 특검과 경영권 승계 등 사업 외적인 문제들이 이러저런 문제를 낳았다면, 이번엔 '잘 나가는 삼성'의 앞길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어찌보면 한층 근본적 위기다.

   무엇보다 삼성에 대한 글로벌 견제가 만만치 않다.

   당장 구글이 미국의 휴대전화 제조사인 모토로라를 전격 인수하며 가뜩이나 경쟁이 치열한 스마트폰 한층 혼전 양상으로 치닫게 됐다.

   물론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에 대해선 삼성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안드로이드 진영을 대표하는 구글이 전면에 나서 애플을 견제하면 삼성으로선 나쁠 게 없다"는 입장을 내놓는 반면, 다른 쪽에선 "애플과 양강구도를 형성한 상황에서 또 다른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한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실제 삼성은 모토로라가 매물로 나온 직후 인수 제안을 받고, 사들이는 방안을 깊게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관계자는 "모토로라 인수 제안은 우리도 받았고 실제 검토했었다"며 "그러나 같은 세트 업체로서 시너지가 없다고 판단해 인수를 포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찌됐든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은 앞으로 삼성이 애플뿐 아니라 '같은 편'으로 여겼던 구글과도 밀고 당기는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애플과 소송전이다.

   삼성 입장에서 애플은 최대 고객이자 최고 경쟁자인 계륵과도 같은 존재다.

   더구나 최근 들어선 애플이 갤럭시S Ⅱ와 갤럭시탭에 대해 특허 침해 소송을 걸어오며 양측간 글로벌 소송전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고 있다.

   특히 독일 법원에서 갤럭시탭에 대한 애플의 판매금치 가처분 신청을 수용하며, EU시장 전체 수출이 막힐 수도 있는 위태로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뿐 아니다. 삼성의 대표 사업인 반도체와 LCD 시황은 불황에서 반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일본 엘피다를 비롯해 대만 업체들은 너도나도 '삼성 잡기'를 선언하고 나섰다.

   여기 더해 미국발 글로벌 경제위기로 삼성전자 주가는 곤두박질 친데다, 근본적으로 세계 경제 더블딥 우려를 헤쳐나갈 묘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 때문에 재계 안팎에선 이 회장이 경영 복귀와 함께 정기 출근을 감행하며 그룹 쇄신에 나선 것도 이 같은 위기 의식의 발로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 회장 자신도 이미 여러 차례 긴장과 위기의식을 강조해 왔다.

   이 회장은 경영 복귀 일성으로 "앞으로 10년 안에 지금 삼성을 대표하는 모든 제품이 사라질 것이다. 앞만 보고 가자"며 공개적으로 수차례 위기의식을 공공연히 밝혔고, 지난달 29일 선진제품 비교전시회에 참석해서는 ▲소프트 기술 ▲S급 인재 ▲특허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5년, 10년 후를 위해 지금 당장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사장단을 강하게 독려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최근에도 사장단 회의 때마다 위기의식을 강조하며 인재 확보와 신사업 추진을 강도높게 주문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부 부진한 사업에 대해선 전면 재검토를 지시하는 등 핵심 사업에 대해선 직접 진두지휘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그룹 자체에 감도는 긴장도 예사롭지 않다.

   이미 삼성은 테크윈 감사에서 시작된 인사와 쇄신 태풍으로 조직 전반에 어느 때보다 강한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93년 신경영 선언 당시와 비교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한 관계자는 "이 회장은 삼성이 아주 잘 나가던 때에도 늘 위기의식을 강조해 왔다"며 "일련의 행보들도 그 같은 경영 철학의 일환이지만, 최근에는 내부적으로도 더욱 긴장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보기술(IT) 업계가 하루게 다르게 거대하게 지각변동을 하고 있는 큰 격변의 시대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며 "변화의 시점마다 이 회장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보여왔고, 이번에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어떤 묘책을 내놓을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