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덕화 블로그 '슈뢰딩거의 고양이'
   '출생신고 및 주민번호 부여와 심지어 사망신고서까지 모든 자본주의적 커뮤니티 진입에 존재하는 정보수집절차를 통해 우리는 그저 관성처럼 현명성을 노정하며 촘촘히 짜여진 기속의 구조 안으로 발가벗겨진 채 투신한다… 그래서 난 이런 구조 속의 파편화된 매트릭스 같은 실존적 소통을 거부한다… 노마드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으로서 우리는 넓은 초지를 향해 어디든 유목할 수 있는 배회와 권력에 의한 귀속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권리를 원하니까 말이다...'

   전 부인을 흉기로 살해하고 도주한 50대 남성이 자신의 블로그 프로필에 올린 글의 일부다.

   평소 질서와 원칙을 거부하던 그는 전 부인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2달이 지난 현재까지 어떤 단서조차 남기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졌다.

   황씨를 뒤쫓던 경찰은 결국 지난 5일 이 용의자를 공개수배하기에 이르렀다.

   △사건의 발단

   끔찍했던 사건은 지난 7월 7일 오후 7시 30분께 수원시 권선구 곡반정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어났다. 당시 고시원에서 살고 있던 황덕하(46)씨가 자신의 부모 집으로 전부인 A씨를 부른 것. 2년여전 이혼한 후 마땅한 직업없이 A씨가 매달 입금해주는 생활비로 살고 있던 황씨는 이 자리에서 A씨에게 '다시 재결합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A씨가 이를 강하게 거절하면서 서로 말싸움이 오갔고, 급기야 황씨는 자신의 부모가 보는 앞에서 A씨를 흉기로 6차례 찔렀다.

   황씨의 부모는 곧바로 119에 신고했지만 경찰이 도착했을 때 A씨는 이미 숨진 상태였고 이 사이 황씨는 자신의 차량을 몰고 도주했다. 도주하기 전 황씨는 부모에게 "나도 죽겠다"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후 황씨의 부모들은 끔찍했던 사건이 자꾸 떠올라 한동안 사건이 벌어진 집에서 살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 황덕화 블로그 '슈뢰딩거의 고양이'

   △미궁에 빠진 황씨의 소재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수색 끝에 칠보산 중턱에서 황씨의 차량을 찾았지만 황씨의 흔적은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후로도 경찰 수십명이 며칠동안 칠보산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주변 지인들 등을 통해 수사를 벌였지만 황씨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리고 2달여가 지난 현재까지도 황씨는 은행 출금 기록이나 휴대전화 사용, 인터넷 접속 등 살아있다면 꼭 남길수 밖에 없는 '생활반응'까지도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다.

   경찰은 황씨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숨어지내거나 자살했을 가능성에 비중을 두고 수사하고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는 도저히 혼자 생활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경찰 관계자는 "살아있다면 아주 작은 흔적이라도 남길 수 밖에 없는데, 이토록 단서가 없다는 것은 자살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했다.

   결국 수원남부경찰서는 5일 그의 블로그 사진과 은행 CCTV에 찍힌 사진을 공개해 황씨를 공개수배했다.

 
 
▲ 전 부인 살해한 유명블로거 황덕하 공개수배 (사진=수원남부경찰서 제공)

   △유명블로거 황씨

   황씨는 범행 날 오전까지 자신의 블로그에 접속해 수개의 글을 올려놓을 정도로 블로그 관리에 열을 쏟았다. 지금까지 170만명이 방문한 그의 블로그는 대부분 쉽게 접할 수 없는 특이하고 괴이한 소재의 글 1만8천여개가 올라와 있고, 자주 방문하는 일부 매니아층까지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또 트위터 활동까지 활발히 하며 수만명의 팔로워들을 거느리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황씨는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있었으며 그동안 각종 집회나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의 공개수배를 통해 유명 블로거였던 황씨가 전 부인을 살해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한때 황씨의 이름이 인터넷 인기검색어 1위에 오르는 등 그의 소재가 또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일부 네티즌들에게 황씨의 블로그 주소까지 공개되면서 블로그 접속자가 폭주하고 그를 비방하는 댓글까지 난무하고 있는 상태다.

   네티즌 야**은 "무슨 인권변호사인 척 다하더니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네. 양심도 없이 자존심만 살아서 사람을 찔렀다"고 했으며, 밥**은 "저렇게 멀쩡히 생겨서 할 짓이 없어서..."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김혜민기자 khm@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