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왕표 (인천본사 정치부장)
사는 게 팍팍하고 신산하게 느껴지던 어느 가을날 짬을 내 동해안으로 내달렸다. 설악동에 숙소를 정하고 미시령을 오르다 잼버리대회장 쪽으로 방향을 틀어 찾아든 곳이 화암사다. 어느 해인가 우연히 들렀다가 동해를 내려다보는 툭 터진 시원한 눈맛을 주는데 반해 마음속에 새겨두고 설악을 찾을 때마다 우정 들렀던 곳이다.

여름 휴가철이 지나 한적한 절 마당을 거닐다 곧게 쭉 뻗어 올라 동해를 굽어보고 서 있는 아름드리 전나무에 눈길이 갔다. 그 위용하며 앉은 자리까지 부러웠다. 저 전나무로 태어나 한평생을 사는 것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순간 뇌리에 스쳤다. 전에 화암사를 찾았을 때는 전나무를 보면서도 한번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었는데 신산하게 느껴지는 삶이 나무에게까지 부러움을 느끼게 하고 있었다.

어릴 적 나무는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부질없는 생각을 했던, 아련한 기억의 편린이 남아있다. 어린 마음에 이동도 자유롭지 못하고 한곳에 머물러 있어야만 하는 나무에 대해 답답함을 느꼈던 듯싶다. 그런 아이가 성장해 고작 한다는 생각이 나무에 대한 부러움인가 하고 생각이 미치자 그냥 혼자 조용히 웃고 말았다.

그러다 소설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이라는 수필집을 읽다 "자신의 생명 속에서 스스로 밥을 빚어내는 나무는 얼마나 복 받은 존재인가. 사람의 밥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 속에서 굴러다닌다. 그래서 내 밥과 너의 밥이 뒤엉켜 있다"는 문장과 만났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구나하고 일면 반가웠지만 내 생각이 김훈의 생각에 가 닿지 못했구나 하는 느낌이 따라붙었다. 거기에 더해 나보다 더 원초적으로 나무에 대해 부러움을 표현한 것을 보고 그가 얼마나 힘든 세월을 건너왔나 하는데 생각이 머물러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리고 바쁜 일상에 쫓겨 화암사 전나무에 대한 단상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이문구의 '내 몸은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라는 소설집을 뒤늦게 읽으면서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화암사 전나무의 위용을 뽐내는 자태와 앉은 자리를 내가 탐했구나 하고 느끼자 김훈이 원초적이었다면, 나는 속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구는 소설에서 시골마을 집근처 뒷산이나 산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찔레나무, 싸리나무, 화살나무, 으름나무, 개암나무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조차 희미하나 자기 줏대와 고집이 뚜렷한 농촌 사람들을 '장평리 찔레나무', '장이리 개암나무'식으로 정감있게 그려놓고 있다. 그들은 수더분하면서도 고집스럽고, 학식은 짧지만 제반 일상사에서 경우 하나는 깍듯하게 바른 사람들이다. 우리네 형이며 누이며 삼촌이다. 그들은 앉을 자리를 탐하지 않으며, 남의 것을 경우 없이 제 것으로 챙겨먹지도 않는다. 자태를 뽐내거나 잘난 체도 하지 않는다. 그저 뿌리 내린 곳에 정붙이고, 소처럼 묵묵히 자식을 키우고 삶을 이어간다. 속상할 때는 어깃장도 놓고, 대거리도 해보지만 이겨먹기보다는 지고 산다.

세상 돌아가는 품이 잘난 사람도 참 많고, 잘 해처먹고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가는 사람도 참 많다. 세상은 그들이 주인인듯 보이지만 속살 깊이 세상살이를 들여다보는 이 문구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감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상의 주인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날카로운 풍자와 풍성한 해학으로 대단할 것도 없지만 누추할 것도 없는 우리네 삶이 진짜 삶이라는 것을 핍진하게 알려주고 있다.

폭우와 폭염이 길게만 느껴지더니 하룻밤 사이 가을바람이 살결에 스쳐가는 느낌이 더없이 시원하다. 숨 돌릴 틈도 없이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은 겨우살이 걱정이 앞서고, 자식 취직 걱정에 전세금 올려 줄 걱정까지 시름이 깊지만 요 며칠간 만이라도 가을바람을 폐부 깊숙이 들이마시며 시원함을 느껴봤으면 좋겠다. 멀리 갈 필요없이 소래생태공원이나 인천대공원이라도 찾아가 갈대숲길과 오솔길을 거닐며 풀벌레소리라도 듣고 나면 한결 마음이 여유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