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효과가 정치권에 큰 자극을 주고 있다. 서울시장 후보 불출마를 발표했고, 언론의 집요한 질문에도 내년 대선에 불출마 의사를 표시했다. 현재로선 그가 정치에 뜻이 있든 없든, 정치를 안하려 한다는 것이 팩트다. 그러나 안철수의 후폭풍은 국회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장 지난 21일 양승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날 표결에는 한나라당이 반대하는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 통과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민주당이 당초 불참할 방침을 바꿔 본회의 직전 조건없이 참석했다. 임명동의안은 재석의원 245명 중 찬성 227명, 반대 17명, 기권 1명으로 가결됐다. 특히 과거처럼 단상점거, 멱살잡이 같은 볼썽사나운 모습을 피한 것은 정말 다행스럽다.

민주당의 통큰 판단 뒤에는 조용환 헌법재판관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앞두고 절대 다수의 한나라당과 빅딜하려는 전략도 숨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손학규 대표가 "민주주의 정당정치를 지켜나가자. 손가락질과 불신과 외면을 당하는 정치를 우리가 다시 살려내자"며 본회의 참석 명분을 밝힌 것처럼 민주당 수장의 오픈마인드가 큰 역할을 했다. 아울러 안철수현상을 통해 기존 정치권의 소모적 정쟁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극에 달하고 있음을 잘 아는 여야가 뒤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결과다.

민주당의 양승태 대법원장 국회 임명동의는 여러 요인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신선하다. 정치에서, 아니 일상에서 최선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대화와 협상이 필요하고 이를 통한 합의는 최선이 아닌 차선임에도 갈등의 소지를 사전에 제거할 수 있다.

헌법재판관 공석 사태가 두달을 훨씬 넘어서고 있다. 헌법재판관은 권한쟁의, 위헌법률, 헌법소원, 탄핵, 위헌정당해산 등을 심판하는 엄중한 자리로 여야 이념싸움으로 장기간 비워둘 자리가 아니다. 헌법재판관 9명 중 국회추천 몫 3명 가운데 1인은 야당이 추천해 왔다. 이런 관례를 전제로, 민주당이 한번 양보한 만큼 한나라당도 야당 추천권을 관례대로 인정하는 상생의 정치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여야의 대화와 협상이 이뤄지지 않으면 안철수 바람으로 사상 최대의 위기에 처한 정당정치를 복원할 기회를 영영 잃을지도 모르는 것이 현재 우리의 정치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