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규 (경제부장)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올해의 대표적인 뉴스메이커중 한 사람이다. 사실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예금보험공사 등 금융 관련 기관들이 뭐하는 곳인지 그 역할과 기능에 대해 상세히 알고있는 일반인들은 드물다. 그냥 정부의 한 기관쯤으로 생각하는 정도이고 혹여 이들 기관의 내부 구조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조차도 쉽게 정보 접근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기획재정부는 옛 기획예산처와 재무부가 통합한 대한민국의 경제정책 헤드쿼터(head quater)로 이들 기관들을 총 지휘총괄하는 정부의 핵심 부처다.

새삼 이들 금융기관을 들먹이는 이유가 있다. 일반인들에게 존재감을 느낄 틈조차 없이 거의 생소했던 이들 기관들이 올초부터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책임의 핵심 대상들이기 때문이다. 올 1월 4일 삼화저축은행 영업정지, 2월 17일 부산 및 대전저축은행 영업정지, 8월 5일 경은저축은행 영업정지, 9월18일 토마토 등 7개 저축은행 영업정지…. 올들어 영업 정지된 저축은행이 벌써 16개다. 저축은행에 돈을 넣은 서민·중산층은 패닉에 빠졌다. 5천만원 넘게 예치한 사람들은 원금 손실이 불가피하다. 자식 몰래 용돈을 모아두거나 시장 좌판을 벌여 푼푼이 모은 쌈짓돈을 날리게 된 60~70대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성역과도 같았던 이들 금융기관들을 상대로 거친 삿대질을 하며 절규하는 모습은 온국민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있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도록 정부와 금융당국은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책임지겠다는 사람이나 기관은 어디에 있나?" 등등 피해자들의 절규는 한(恨)으로 변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의 최대 포커스도 당연히 저축은행 감사에 쏠렸다.내년 총선과 대선을 겨냥한 여야 정치인 모두가 저축은행 국감 성적에 따라 운명이 걸려있기는 마찬가지다. 이 폭풍속에 김석동 금융위원장, 권혁세 금융감독원장, 이승우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이 국회의원들의 격한 질타를 받아내느라 곤혹(?)을 치르고 있다. 수없이 드러나는 부실 관리중 저축은행의 경영권을 감시하는 외부감사·사외이사·회계법인에 대한 직무 유기는 국민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한나라당 배영식 의원은 지난 23일 국감에서 "저축은행의 감사 등 요직에 근무하는 주요 임원을 보면 금감원 출신이 34명으로 75.3%, 예금보험공사 출신이 3명 6.6%, 자산관리공사 4명 8.8%, 기타 금융 또는 사정기관 출신이 4명"이라고 지적했다. 배 의원은 "저축은행에 전직 금감원 출신이 대거 포진되면서 이들의 로비에 의해 부실이 덮어지고 허위 공시가 판을 쳐도 눈감아 주는 감독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면서 "금감원과 예보 퇴직 간부들이 저축은행 자리를 석권하면서 감사일은 뒷전으로 놔두고 로비 창구 역할로 금감원과 검은 커넥션을 이뤄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강성종 의원도 "98개 저축은행 가운데 40개 저축은행에 금감원 출신자가 1명에서 많게는 4명까지 모두 62명이 재취업했다"면서 "이중 감독 기능을 하는 감사만 28명, 사외이사 26명, 이사 7명에 고문 1명"이라고 말했다. 이를 보면 금융감독 당국과 회계법인·감사·사외이사 등 저축은행을 상시 감시하고 대주주를 견제해야 할 4대 감시기구(watchdog)들이 '금융권 및 권력기관 퇴직자 돌리기 인사'의 도구로 활용돼 왔다는 반증이다.

최근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언론사와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답답한 심경을 토로한 것은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김 위원장은 "저축은행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의 저축은행 사외이사 또는 감사 배치는 제도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임기내 관련 법과 규정을 뜯어고쳐 이른바 전관예우 오해 소지를 없애겠다"는 강경 입장을 당정청에 요구해 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소잃고 외양간을 고쳐'서라도 해야 할 판에 당정청이 애써 외면하는 진짜 이유가 궁금해지는 이유다. 진정한 개혁과 재발 방지 대책은 사외이사 및 감사 선임 시스템 개선부터 시작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