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의 온라인 취임식은 그가 서울시장이 되는 과정에서 이어온 파격 행보의 절정이었다.

   60여년 만에 처음으로 시장 집무실을 일반에 공개했다. 업무 공간뿐 아니라 휴게실, 극히 개인적인 공간인 화장실과 샤워실까지 인터넷을 통해 보여줬다.

   그는 시종일관 중계 카메라 너머의 시민을 마치 귀한 친구처럼 대했다. 첫 인사말도 "시민이 시장입니다"였다. 취임식의 마지막역시 덕수궁 앞에서 시민과 직접 만나는 `깜짝 이벤트'로 장식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시장 집무실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온라인 취임식에서 취임선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사상 첫 `온라인중심' 취임식 = 온라인만으로 취임식을 연다는 발상 자체가 파격이었다.

   그동안 일반적인 방식의 취임식을 하면서 인터넷으로 중계한 적은 많이 있었지만 이번 박 시장의 취임식처럼 온라인만으로 진행된 적은 없었다.

   서울시 유길준 총무과장은 "취임식을 준비하면서 외국의 비슷한 사례를 찾아봤지만 발견하지 못했다. 어쩌면 세계 최초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그동안 시장 취임식은 주로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서울시나 관련부처의 고위 관계자 등을 초청해 진행했다.

   진행 과정은 시장이 높은 연단에서 서서 선서하고 취임사를 읽으면 외빈이 축사하는 방식으로 대동소이했다.

   1995년 조순 시장 취임식이 비교적 시민과 가까운 공간인 남산 백범광장에서 열렸지만 이때도 진행 방식은 일반 취임식과 같았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16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공식 취임식이에서 집무실에 딸린 내실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시장실이 일반에 공개된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1946년 9월28일 김형민 시장이 초대로 취임한 이래 시장실이 이토록 속속들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기존에 외빈이 낭독하던 축사는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시민으로부터 받았다. 박 시장은 취임사를 읽고서 집무실 책상에 앉아 아이패드에 뜬 시민의 축하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었다.

   유일하게 참석한 외빈인 서울시의회 허광태 의장이 축사한 것도 이례적이다. 박 시장은 지난 10일 열린 시의회 정례회 개회사에서 "서울시와 시의회는 마차의 양 바퀴"라며 의회와의 협력과 소통을 강조한 바 있다.

   ◇"시민이 시장" `경청행정' 의지 드러내 = 집무실 소개는 앞으로 펼쳐나갈 시정 방향을 박 시장이 직접 일반 시민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시작으로 시정을 펼치겠다는 의지를 수차례 밝혔다.

   박 시장이 시민을 시장실로 `초대'하면서 한 첫 말은 "시민이 시장입니다"였다. 그의 최측근은 "경청을 통한 행정을 하겠다는 시정 철학을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의 취임식이 16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시장 집무실에서 온라인 생중계로 열렸다. 박 시장이 취임식 전 집무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최근 새로 꾸민 집무실에 들어서고서 첫 번째로 소개한 것은 400여 시민의 메시지가 적힌 `포스트잇 벽지'였다.

   박 시장이 후보시절 경청투어에서 시민으로부터 받은 메모지를 한쪽 벽 가득히 붙인 것이다.

   한 측근은 "박 시장이 틈날 때마다 메모를 읽으며 정책 발굴의 단초를 얻고 있다. 앞으로도 현장에서 시민의 아이디어가 적힌 메모지를 받으면 이곳에 붙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집무실 중앙의 회의 탁자에는 시장 자리 기준으로 오른쪽 상석에 `시민시장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집무를 보거나 회의를 할 때마다 시민이 항상 이 의자에 앉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발 앞서 나가며 끌어가기보다는 조금 더디게 진척되더라도 시민의 의사를 충분히 고려하는 행정을 펼쳐 나가겠다는 의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취임사를 읽을 때 부시장단과 함께 박 시장의 뒤에 선 실국장급 인사는 이정관 복지건강본부장과 이인근 도시안전본부장이었다. 복지와 안전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시정 방향을 드러낸 것이었다.

   집무 테이블 맞은편 책장 위에는 보도블록 벽돌 11개가 놓여 있었다. 예산을 절감해 서울시가 당면한 최대 과제중 하나인 부채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의 취임식이 16일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시장 집무실에서 온라인 생중계로 열렸다. 박 시장이 취임식 전 집무실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연합뉴스)

   ◇산적한 과제 `시민과의 연대'로 푼다 = 박 시장이 이처럼 `경청행정'을 강조한 것은 산적한 시정 과제와 앞으로 제기될 수 있는 정치 공세를 시민과의 연대로 풀어나가겠다는 구상을 드러낸 것으로 읽힌다.

   박 시장은 공약한 대로 복지를 확대하는 동시에 임기 3년간 20조원에 달하는 서울시 부채를 큰 폭으로 줄여야 하는 난제를 풀어야 한다.

   복지를 늘리면 필연적으로 그만큼의 예산이 투입된다. 여기에 최근 수 년 새 잇따르는 대형 수재를 예방하기 위한 시설을 갖춰나가는 데에도 적지 않은 재원을 들여야 한다.

   벌써부터 2014년까지 부채 7조원을 줄이겠다는 목표가 허황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범야권 후보로 당선된 그는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는 안철수 원장과 민주당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도 해야 한다. 내년에는 3월 총선과 12월 대선 등 굵직한 정치 이벤트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어떤 목소리를 내든 `시정을 정치화하지 마라'는 한나라당의 공세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 시장은 이날 취임식 선서를 마치고 "저는 시민 여러분을 대신하여 서 있습니다. 저는 시민 여러분과 함께 행동합니다. 저는 시민 여러분에게 늘 묻고 듣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언제든지 위태로울 수 있는 임기 3년을 자신을 지지해준 `시민과의 연대'를 통해 헤쳐나가겠다는 게 박 시장의 전략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