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이후 세계 금융시장에서 태풍의 핵으로 떠오른 유럽 재정위기가 한국 채권시장에는 기회가 됐다.

   한국 국채는 상대적으로 높은 국가 재정건전성과 크게 늘어난 외화보유액을 바탕으로 투자처를 잃은 외국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1997년 환란을 겪을 정도로 대외변수에 취약한 한국경제의 체질이 과거와 크게 달라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채권 전문가들은 당분간 국내 채권시장으로 외국계 자금 유입이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높아진 한국 채권의 위상
   21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한국 10년물 국채금리는 지난해 연말 4.52%에서 올해 7월 말 4.20%, 이달 16일 3.79%로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특히 유럽 재정위기로 세계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한국 10년물 국채금리는 7월 말에서 이달 16일까지 석 달 보름여 만에 41bp(1bp=0.01%) 떨어져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에서도 8번째로 금리 하락폭이 컸다.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인도네시아, 중국 다음으로 하락폭이 컸다.
한국 채권시장에는 올해 들어 외국계 자금이 12조원 가량 유입돼 금리가 낮아졌다.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면 안전자산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번 위기 상황에서 한국 국채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자산으로 투자자들의 평가를 받은 셈이다.

   유럽 국가들이 재정난에 허덕이자 재정 위험이 덜한 한국이 주목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외화보유액이 늘어난데다 통화스와프 조치로 유동성을 충분히 확보한 상태다. 재정건전성도 유럽 국가나 상당수 아시아 국가에 비해 탄탄한 편이다.

   국가별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은 한국이 32.02%로 일본(233.1%), 프랑스(86.81%), 독일(82.64%), 이탈리아(121.06%) 등에 비해 현저히 낮다.

   재정건전성이라는 장점에 원화 절상 기대감까지 더해져 한국 국채시장에 외국인들이 몰려들었다.

   ◇외국인 '러브콜' 지속 전망
   채권 전문가들은 외국인 자금 유입이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 재정건전성이 우수한데다 원화 절상에 대한 기대감도 여전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채권 투자 때 국가 신용등급을 최우선으로 봤지만, 지난해 유럽 재정위기가 불거지면서부터는 재정건전성이 좋은 나라의 채권이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최문박 LG경제연구원 연구원은 "국내 채권시장이 발달하는 과정에서 대외적으로도 한국 국채가 좀 더 신뢰를 얻고 있다. 과거 외국인이 국내 채권시장에 주로 스와프 거래를 통해 들어왔다면 이제는 장기 투자 목적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금융센터 윤인구 연구위원은 "국외 투자은행(IB)의 향후 1년 환율 전망을 보면 원화 강세에 대한 기대가 높다. 환차익을 염두에 둔 외국 자금이 더 들어올 여지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국채가 미국 국채처럼 안전자산 위상을 확보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박종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아직은 '안전자산에 가깝다'는 평가가 더 정확하다. 최근 3년간 한국은 외환건전성 조치들로 안전 둑을 높게 쌓긴 했지만, 유럽 재정위기가 더 확산하면 안전자산으로서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형호 한국채권투자자문 대표는 "아직은 안전자산이라고 보기 어렵다. 지금보다 단기채무가 적어야 하고, 경상수지와 자본수지, 종합수지가 흑자를 유지해야 하며 경제성장률이 더 높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