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석화같았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22일 내년 예산안을 논의한다며 국회 본회의장 맞은편 예결위장에서 의원총회를 개최한 뒤 오후 3시께 기습적으로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약 140명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오후 3시께 본회의장에 입장하자마자 국회 본청 정문과 양측 출입구의 안전셔터가 내려가기 시작했다.
약속이나 한듯이 수백명의 전·의경들이 국회 본청을 에워싸면서 긴장감이 고조됐다.
오후 3시를 조금 넘기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한두명씩 본회의장에 입장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손학규 대표, 김진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과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등 여야 의원들도 제지를 받지 않고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국회의장이 비준안의 심사기한으로 정한 오후 4시를 조금 넘긴 순간 민주노동당 김선동 의원이 국회의장석 바로 앞 발언대에서 가방에 넣어온 최루탄을 터뜨렸다. 김 의원은 최루가스를 뒤집어썼고, 여야 의원들이 본회의장 양측에 있는 화장실로 달려가면서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돼버렸다. 김 의원은 발언대 주변에 쏟아진 최루탄 가루를 손으로 모아 박희태 국회의장 대신 의장석에 앉아 있는 정의화 국회부의장에게 뿌렸고, 정 부의장도 의장석에서 물러났다.
잠시 뒤 민주당 신학용(인천 계양갑) 의원 등 일부 의원들은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얼굴을 한채 본회의장 밖으로 뛰어나오고, 물티슈와 마스크를 손에 든 의료진 3~4명이 본회의장으로 들어가는 등 혼란이 잠시 이어졌다.
오후 4시24분 본회의가 시작됐지만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의 의장석 점거 시도 등 물리적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다. 한미 FTA 비준안은 오후 4시28분께 처리됐고, 이어 한·미FTA 이행을 위한 14개 법안도 차례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은 의장석 아래에서 정 부의장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질렀을뿐 정 부의장의 본회의 진행을 물리적으로 막지는 않았다.
한편 한나라당은 전날 지도부 회의를 거쳐 '22일 표결처리' 방침을 확정했으며, 이날 오전 한나라당 황우여,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간의 최종 협상이 결렬되자 전격적으로 한미 FTA 비준안 단독처리를 감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앞서 박희태 국회의장은 "오후 4시까지 비준안을 심사해 달라"며 직권상정을 위한 심사기일을 지정한 뒤 사회권을 정의화 국회부의장에 넘겼고, 정 부의장은 질서유지권과 경호권이 발동된 상황에서 비준안을 직권상정해 표결 처리했다.
/이호승·송수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