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위원장의 사망이 한동안 잠잠하던 금융시장의 `한반도 리스크'를 자극할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후 들어 우리나라의 위험성을 반영한 원ㆍ달러 환율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급등했다. 외국인이 투매한 국내 주식과 채권 가격은 급락했다.
당국은 잇달아 긴급회의를 열고 `비상 태세'를 갖췄다. 은행들도 임원회의를 소집하고 개성공단 지점의 상황을 점검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가공할 폭발력을 지닌 북한발 악재가 한동안 시장을 거세게 뒤흔들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 공식일정 모두 취소…잇단 `비상회의'
기획재정부는 김 위원장 사망 직후 간부회의를 여는 동시에 경제부처 장관들의 회의체인 위기관리대책회의도 긴급 소집했다.
기재부는 오후 2시 신제윤 1차관 주재로 긴급 확대간부회의를 열어 24시간 비상근무체계 가동을 선언했다. 신 차관은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초동 대응이 가장 중요하다"며 강호인 차관보를 실장으로 경제정책국에 상황실을 가동했다.
박재완 장관은 이날 코엑스에서 열린 공공기관 채용정보 박람회에 참석했다가 급거 과천으로 돌아와 간부회의를 주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오후 3시 긴급 국무회의가 잡히면서 바로 시내로 이동했다.
박 장관은 또 오후 4시 중앙청사에서 비상 위기관리대책회의를 주재했다.
기재부는 주요 20개국(G20)과 네트워크를 풀 가동해 상황에 대처하는 동시에 국제신용평가사와의 네트워크도 강화하고 있다.
기재부는 당분간 국내외 금융시장 동향, 원자재 수급 상황, 생필품 수급 상황, 무역 현황, 외신 반응 등을 24시간 점검할 계획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도 이날 금융시장 특별점검회의를 열어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를 주관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북한의 문제가 앞으로 국내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확대할 우려가 있어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특단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가뜩이나 국내 금융시장이 유럽 재정위기로 살얼음판을 걷는 마당에 북한에서 대형 악재가 터지면서 불확실성이 더욱 증폭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이에 따라 `비상금융상황 대응팀'과 `비상금융 통합상황실'을 꾸려 시장 상황을 24시간 살피면서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곧바로 강력히 대응하기로 했다.
정부는 20일 대내외 시장 동향과 실물 부문을 점검하기 위한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를 소집했다.
◇은행들도 `노심초사'…"개성공단은 이상무"
은행들은 자체 회의를 소집해 상황 변화가 경영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KB금융지주는 어윤대 회장 주재로 비상경영위원회를 소집해 국내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했다. 국민은행도 민병덕 행장 주재로 부행장 등 임원진을 모아 비상 회의를 열었다.
민 행장은 "북한 리스크가 장기간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하면서 국내 금융시장의 잠재적 위험 요인을 분석하고 금리와 외화 유동성 등을 철저히 챙기도록 주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민은행은 당분간 매일 비상 임원회의를 열어 시장 상황을 점검할 계획이다.
국내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개성공단에 지점을 둔 우리은행은 상황 전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다만, 당장 지점 영업을 중단하거나 철수할 계획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정부 당국의 대응을 주목하고 있다. 개성공단 지점은 환전 등 기본적인 영업만 하고 있어 지금도 업무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 12월 문을 연 우리은행 개성공단 지점에는 지점장을 포함해 우리은행에서 파견된 직원 3명과 현지에서 고용된 직원 3명 등 6명이 근무한다.
◇전문가들 "1994년과 달라…상황 오래갈 것"
당국과 금융권의 발 빠른 대응 노력에도 시장 불안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 때와 달리 이번에는 북한의 후계 구도가 매우 불안정해질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 사태를 진단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수석연구원은 "발표대로 건강에 의한 과로사로 판명 나도 후계자인 김정은의 나이가 20대에 불과해 불안감이 빠르게 완화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연구원 이명활 국제ㆍ거시금융연구실장은 "김일성 사망은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며 "당시에는 김정일의 위치가 확고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한반도 리스크는 금리, 자금, 외환시장과 실물경제에 충격을 줄 뿐 아니라 국가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김 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 우려와 관련해 "현재로선 실물경제 상황이나 금융 부문의 건전성에 비춰볼 때 특별히 그런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한반도의 정정불안이 계속되면 외국계 신용평가사들도 국내 시장의 위험성을 신용등급에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명활 실장은 "북한의 권력투쟁 등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고 강경파가 목소리를 높이면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이 커져 국가신용등급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