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정식 / 사회부장
-동급생이 물고문을 하고 전깃줄로 목을 묶어 끌고다니며 음식물을 먹게 했다. 돈을 요구해 일을 해야 했고, 돈을 주지못하면 무지막지한 폭력이 찾아왔다. 아무도 이런 고통을 알아채지 못했다. 결국 견디다 못한 아이는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끊었다. 부모 앞으로 쓴 유서에 아이는 "'그들이' 집을 드나들 수 있으니 출입문 비밀번호를 바꾸라"는 가슴 아픈 글도 남겼다.-

지난달말 이렇게 보도된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은 너무나도 참담한, 그리고 듣기 거북한 학교폭력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아이가 그토록 고통스러워 할때 학교와 교사,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단 말인가. 부모에게 알리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에 고민하며 누구의 도움도 받지못한 중학생의 자살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늦게나마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을 계기로 학교폭력을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나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경찰은 사건 이후 전국 모든 경찰서에 최소 1명 이상의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을 두고 학교폭력 2차 피해를 사전 차단하기로 했다. 교육청은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세미나와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대책을 찾겠다고 난리다.

교육과학기술부도 3월부터 초·중·고등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교폭력 가해 사실을 기록할 방침이라고 최근 발표했다. 종전 학생부의 '학적사항', '출결상황', '행동 특성 및 종합의견'란에 학교폭력 가해 행위가 기록되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학교폭력이 발생할 경우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에서 결정한 가해 학생에 대한 조치사항을 기록하겠다는 것이다.

조치 기록은 졸업후에도 초·중학교는 5년간, 고교는 10년간 보존되며 고교와 대학에 입시자료로 제공된다.이런 조치는 진학시 가해 학생에 대해 불이익을 제공함으로써 학생과 부모의 관심을 끌어내 학교 폭력을 줄여보겠다는 취지일 것이다. 또한 정부도 형사처벌 연령 하향조정과 가해 학생 징계수위 상향, 강제전학 조치 등을 가능케하는 대책을 마련중이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조치보다 중요하게 볼 대목은 학교폭력을 '처벌이 뒤따르지 않는 단순 장난 정도'로 치부하는 학생들의 인식이다. 그 인식을 변화시키지 않고서는 학교폭력을 없앨 수 없다. 얼마 전 학교 폭력의 한 가해 중학생이 경찰에서 "14세 미만은 형사미성년자로 처벌받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고등학교와 달리 중학교에서는 강제 전학을 시킬 수 없다"고 천연덕스럽게 말해 경찰을 놀라게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마냥 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중학생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처벌이 별것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런 사실을 알고 학교폭력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학생인 딸 아이에게 물으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사가 함부로 체벌할 수 없다는 사실과 강제 전학시킬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실제 학교폭력의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중학생들의 학교폭력 사건은 날로 급증하는 추세다. 통계상으로도 중학생들의 학교폭력은 이미 고교생들의 학교 폭력건수를 압도했다. 앞서 경기도교육청이 조사한 2010~2011년 학교 폭력 가해자 현황자료에 따르면 초교생 71명, 중학생 3천89명, 고교생 437명으로 중학생들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중학생들은 이미 우리 사회의 법과 제도의 허점을 정확히 꿰고 있을 정도로 똑똑하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이 얼마나 큰 범죄인지, 또한 그 범죄행위에 대한 엄한 처벌도 뒤따른다는 점을 명확히 해줄 필요가 있다. '범죄를 저질러도 처벌받지 않는다'가 아니라 '앞으로 응분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다.

내 아이 잘못에 눈감고 남 탓만 하는 부모들과 학생인권조례 등을 핑계삼아 아이들의 비행을 모른 체 하는 학교,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학교폭력이 범죄라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못할 수 있다. 부모가 나서지 않고 학교가 변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회가 나서 냉철한 법의 잣대를 아이들에게 들이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