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우영 (정치부장)
한국사람 셋만 모이면 얘깃거리는 늘 정치다. 정치를 탓하고 혐오하고, 정치인을 욕하고 분개해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 댄다. 놀라우리만치 정치지향적인 우리네 서민들이 어느순간 기성정치에 염증을 느꼈다며 정당정치를 붕괴 직면까지 몰고 왔다. 여야 공히 쇄신을 위해 난리다. 이쯤되면 서민들 입장에선 나 살기 바빠 정치에 무관심할 수도 있으련만, 입신양명의 최고 정점을 '국회의원'으로 낙인찍는 놀라운 정치 집착력을 보인다. 보수가 낫느니, 진보가 낫느니 핏대 올려가며 열심히 논쟁을 벌이다가도 "우리 주변에서 누구 한 명이라도 국회의원 만들어야 면이 서는 것 아냐?"라면서. "누구누구는 소속당은 마음에 안 들지만 이래저래 엮여 있으니 발벗고 밀어 줘야지"라며 그간의 설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기준과 논리로 끝을 맺는다.

4·11 총선이 70여일 남았다. 경기지역의 경우 29일 현재 362명이 등록, 평균 7.1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아직 등록하지 않은 현역 의원들과 이리 저리 눈치를 살피는 출마희망자들을 감안하면 대략 10 대 1의 경쟁률이 될 것이란 게 지역정가의 관측이다. 선거구가 네 곳인 수원·성남· 안산·부천·고양 등 대도시의 경우 40명 이상이 선거에 나선다며 사방을 누비고 다니는 셈이니, 그야말로 누가, 어느 곳 후보인지 정신이 없다. 각 정당마다 공천기준이 정해지고 경선 등을 거쳐 공천이 확정되면 난립하는 후보들도 가닥이 정리되겠지만 이처럼 후보들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우선은 앞서 언급했듯 기성 정당, 기성 정치인에 대한 불신과 불만이 확산되면서 무명에 불과한 자신들에게 기회가 될 것으로 예상하는 신진들이 많이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 현역 의원들에 대한 각 정당들의 물갈이 방침도 신진들에게는 빈틈을 헤집을 여건을 제공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인 되기'가 만만해진 것이다. 여기에 국회 입성을 출세의 입지로만 보려는 우리네 정서도 한몫한다. 그러나 말이 정치신인일 뿐 굳이 예비후보들을 큰 부류로 나열하자면 현역 국회의원, 전직 국회의원, 전현직 지방의원, 선거에 나왔다 낙마한 사람, 이번 선거에서는 이름만이라도 알리려고 하는 사람 등이 주류다.

이들 가운데 누군가는 당선의 명예를 거머쥘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눈에 띄는 신선한 신예들은 몇 안 된다는 게 지역정가의 평가다. 특히 "앞으로 할 일이 태산"이라는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나 해냈어. 금배지 달았다니깐"이 목적인 사람들, 그 영예에 도취될 사람들이 다수인 것 같다는 분석이어서 걱정이 앞선다. 왜 유능한 사람이 없겠는가. 하지만 정작 봉사할 줄 알고,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할 만한 인격자들은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있나 보다. 결국 정치는 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얘긴데, 그들로 인해 진저리나는 정치의 되새김질이 반복될까 두렵다.

길게는 4개월, 짧게는 2주의 선거운동 기간 유권자들은 후보들을 검증해야 한다. 그러나 학력·경력 등 그 사람의 간단한 이력 외에는 도덕성과 개인 역량 등 유권자들이 검증할 만한 통로는 제한돼 있다. 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권자들은 공천개혁에 나선 여야의 '정의'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각 정당이 유권자가 공감할 만한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기준과 절차를 거쳐 우선적으로 사람들을 추려내길 바랄 뿐이다. 아울러 다방면의 인재들을 영입하고, 자격이 못 미치는 사람은 과감히 도려내는 공천개혁이 현실화되길 바라볼 뿐이다. 그래야만 무한히 추락해 버린 정치 신뢰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정치인들에게 역겨움을 느끼면서도 여의도 입성을 부러워하고, "네 덕 좀 보자"며 권력의 주변에 머무르길 원하는 서민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한, 비관적이게도 우리 국민들이 지향하는 정치개혁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가 국회의원에 당선됐대. 잘됐지 뭐야. 정치는 그런 사람들이 해야 돼"라고 평을 듣는 사람들이 많이 정계에 진출해야만 우리정치는 조금이나마 바뀌어 갈 동력을 얻을 것이고, 국민들은 그 정치에 자그마한 희망이라도 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