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을 강타한 돈 봉투 살포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한 걸음씩 진척되는 양상이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양 갈래로 진행된 수사가 단서를 찾지 못해 한동안 병목현상을 보이는 듯하다가 최근 몇몇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되면서 급진전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이 이런 정황을 토대로 결정적인 물증을 확보한다면 탄력을 받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관련자들이 여전히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 성과를 예단할 수 없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민주 예비후보 압수수색…실마리 풀릴까 = 검찰이 민주통합당 예비경선장에서금품을 뿌린 것으로 의심되는 인물의 신원을 확인함에 따라 수사가 활기를 띠고 있다.

   검찰은 31일 민주통합당 부천 원미갑 예비후보 김경협(50)씨의 선거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하고 바로 김씨를 불러 조사하고 있다. 지난 20일 예비경선장이던 교육문화회관을 압수수색해 CCTV 분석을 시작했던 검찰이 11일 만에 행동에 나선 것이다.

   수사팀은 CCTV에서 누군가가 쇼핑백에서 돈 봉투로 의심되는 물건을 꺼내 일부 참석자에게 건네는 장면을 포착했고, 이 인물을 김씨로 특정했다.

   김씨는 이날 기자회견을 하고 "돈 봉투가 아니라 지난 4일 열린 저의 출판기념회 초청장 봉투"라며 즉각 반박했다. 검찰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해명이라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CCTV 분석 과정에서 김씨 외에도 의심스러운 행동을 한 또 다른 인물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져 수사 진척에 대한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지지부진했던 수사의 터닝포인트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CCTV에 찍힌 봉투에 돈이 들어 있다고 단정할 만한 근거를 확보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HDTV 같은 해상도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CCTV 영상 분석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여기다 한나라당 돈 봉투 사건을 겨냥해 '국회의장실과 화장실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비꼬는 민주통합당의 정치 공세도 부담스럽다.

   검찰 관계자는 민주통합당 쪽 압수수색에 대해 "균형을 맞추려는 수사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朴캠프 '윗선' 정조준…입 열리나 = 한나라당 쪽도 새로운 진술이 나오고 단서가 포착되면서 상당 부분 진척이 되는 느낌이다.

   지난 8일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안병용(54.구속) 한나라당 은평갑 당협위원장 구속 이후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다가 전대 당시 안 위원장으로부터 돈 살포 지시를 받은 구의원으로부터 '중량급' 진술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당시 박희태 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돈 봉투를 가져가거나 반납하는 자리에 캠프상황실장이던 김효재(60) 청와대 정무수석이 있었다는 것이다.

   김 수석은 고 의원이 돈 봉투를 되돌려준 직후 그에게 전화를 건 인물로 지목됐다는 점에서 이들의 진술은 상승작용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도 이제 김 수석 소환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자급 조사에만 맴돌던 검찰이 전날 이봉건(50.1급) 국회의장 정무수석비서관을 소환 조사하면서 칼끝을 점점 '윗선'을 향해 겨냥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고위급을 조사할 정도의 증거물과 진술을 확보했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조정만(51.1급) 국회의장 정책수석비서관과 김 수석 소환에 이어 박 의장이 마지막 조사 대상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점점 현실이 돼가는 분위기다.

   하지만 검찰 수사의 열쇠를 쥔 안 위원장과 박 의장 전 비서 고명진(40)씨가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는데다 당내 역학관계에 따른 신빙성 없는 폭로와 진술이라는 음모론까지 횡행하는 상황이어서 의혹이 속시원히 밝혀질지는 가늠하기 힘든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