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막히게 돌아가는 현대사회, 한국인의 장(腸)은 고달프다. 지난 반세기 빠른 서구화, 산업화는 한국인들에게 윤택한 삶을 안겨준 반면 치열한 경쟁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음주, 흡연 및 육류 중심 고칼로리 식단 등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인해 비만 및 고혈압, 당뇨병 등 각종 성인병을 불러왔다. 장도 예외는 아니다.

과거 한국인에게 드물던 대장폴립 및 대장암이 최근 급격히 증가하고 서구 질병으로 알려졌던 크론병이나 궤양성대장염 등 염증성 장질환도 꾸준히 증가 추세다. 문제는 이런 질병들이 초기 증상이 전혀 없거나 단순히 설사나 변비 등 배변습관의 변화를 보여 과민성장증후군 같은 기능성질환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우리의 장 건강을 지켜갈 방법들을 알아보자.

# 사례1) 54세 여성 주부

2~3개월 전부터 뭐만 먹으면 배가 끓고 아프면서 변이 묽어졌다. 한번 배가 아프면 바로 화장실로 달려가야만 했고, 변을 본 후엔 복통이 호전됐다. 자주 가스가 찼고 방귀나 트림도 잦았다. 평소에도 장이 좋지 않아 밀가루 혹은 기름지거나 맵고 짠 음식을 먹으면 복통 및 설사 증상이 있었다. 몇 달 전 중풍으로 쓰러진 시어머니 병간호를 하느라 몸과 마음이 힘들면서 증상이 악화됐다.

# 사례2) 31세 남성 회사원

약 9개월 전부터 간헐적인 설사가 있다 4개월 전 잦은 야근으로 증세가 악화됐다. 하루 3~10회가량 물설사를 했으며 혈변이나 점액변 등은 없었다. 종종 배꼽 주변 심한 복통이 있었다. 개인의원서 장염진단 후 1주일치 약을 복용, 좀 나아지는 듯하다 다시 증상이 심해졌다. 3~4개월 동안 몸무게가 약 12㎏이나 줄었다. 10여일 전부터 발열과 함께 베개가 젖을 정도로 땀을 흘렸다.

# 사례3)66세 남성 농부

최근 1~2개월 전부터 대변이 가늘어지고 묽은 변을 자주 보며 변을 봐도 시원치가 않았다. 간혹 소량 피가 섞이는 것 같았지만 눈에 띄는 혈변은 없었다. 약 3주 전부터 변비가 점차 심해지더니 1주일 전부터는 변을 한 번도 못 보고 배만 팽팽하게 불러오며 복통이 심해졌다. 관장약으로 관장을 했으나 변은 나오지 않고 배만 더 아파졌다. 3일 전부터는 음식을 먹으면 토하고, 미열이 나기 시작했다.



위의 세 명은 모두 몇 개월 전부터 배변습관에 변화가 있었다. 처음 증상은 모두 비슷했지만 결과는 다음과 같이 큰 차이가 난다. 사례1의 54세 주부는 과민성장증후군으로 진단됐다. 간단한 약제 처방 후 점점 좋아졌으며, 특히 시어머니 건강이 회복되며 스트레스가 줄자 증상이 현저히 호전되었다. 사례2 주인공 31세 회사원은 크론병으로 진단됐다.

크론병은 입부터 항문까지 소화관을 침범하여 염증, 궤양을 일으키는 원인불명의 만성질환으로 심하면 협착, 천공 등을 일으켜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흔하다. 환자는 다행히 스테로이드 치료 후 복통, 설사가 호전되어 퇴원하였으며 외래에서 계속 약물치료를 하며 경과 관찰 중이다. 사례3의 주인공 66세 농부는 응급실에서 복부 CT 및 내시경검사 결과 대장암으로 인한 대장 폐색(막힘)으로 진단돼 응급으로 대장스텐트 삽입 후에야 밤새도록 설사를 하고 배도 부드럽게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장절제 수술을 받고 회복 중이다.

이처럼 비슷한 증상으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크게 다를 수 있다. 배변습관의 변화는 무심코 지나쳐 버릴 일이 아니다. 대다수 잘못된 생활습관(음주, 자극성 음식)이나 스트레스로 일시적인 장기능 변화 때문이지만 무심코 넘기다간 자칫 질병을 일찍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물론 배변습관 변화만 있으면 모두 대장내시경 같은 검사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별표와 같은 증상이 동반되면 반드시 소화기내과 의사와 상담을 해 보는 게 좋다.

 
 

<장 질환 증상 체크리스트>

■ 이유 없이 체중이 빠진다.
■ 대변에 피가 묻어 나온다.
■ 대변이 연필 굵기 정도로 가늘어진다.
■ 열이 나거나 밤에 베개가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난다.
■ 밤에 복통, 설사 때문에 잠을 깬다.
■ 빈혈이 있다.

도움말/가톨릭대학교 성빈센트병원 소화기내과 이강문 교수
/이준배기자